[건강칼럼] 박성규 한의학 박사·예올한의원 원장
성리학과 법치를 근간으로 오백여 년 역사를 이어 온 조선은 올곧은 천재들의 국정 운영에 힘입은 바 적지 않다. 천재들이 사심 없이 백성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을 때 어떠한 결과가 이루어지는지를 조선왕조는 여실히 보여준다. 세종대왕처럼 많은 성취를 이루어 민족의 자산을 풍부하게 한 분이 있는가 하면, 율곡 이이 선생처럼 공사를 막론하고 성인의 길을 걷고자 노력하였으나 현실의 벽에 막혀 나라의 부강과 백성의 안녕을 보지 못하고 요절한 분도 많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율곡 선생은 어려서부터 총명 민첩하여 박람강기하였으며 글도 잘 지었다. 겨우 6세에 읽지 않은 책이 없었고 박학과 문장으로 신동이라 일컬었다. 과거 시험에서는 아홉 번을 장원급제하여 고려 광종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성정이 올곧고 언행이 일치하였으며 국가와 백성을 위해 항시 노심초사하여 성리학의 귀감이 되었다. ‘동의수세보원’에 ‘성인은 욕심이 없는데 이는 노스님의 청정적멸의 무욕이 아니다. 성인의 마음은 천하가 어지러울까 항상 걱정하여 개인의 욕심에 기울 겨를이 없다. 이에 배움에 싫증 내지 않고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율곡 선생은 이를 몸소 실천하였다.
임금을 바로 세우고 당파를 아우르며 백성을 구제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겼다. 조정에 나아가 왕도정치를 구현하고 물러나서는 성리학의 가르침에 충실하였으나 47세 너무 이른 나이에 요절하였다. 직언으로 경원하였으나 나중에야 선생의 충정을 깨달은 선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항상 청렴하게 생활하여 서울에 집 한 칸 없었으며 집안에 재물이 없어 사후에 지인들의 도움으로 장례를 치렀을 정도였다. 모리배들의 분탕질로 조선이 가장 허약했을 때 국정을 맡아 부국강병을 추구하였으나 큰 뜻을 미처 펴기도 전에 요절하였으니 애석하기 그지없다.
율곡 선생이 가장 존경하였던 어머니 신사임당은 사서삼경과 역사에 밝았고 시 그림 글씨에도 능한 또 다른 천재였다. 남편을 잘 보필하였고 율곡 선생과 같은 성인을 잘 훈육하여 오늘날에도 많은 이의 존경을 받고 있는데 안타깝게 46세에 요절하였다. 신사임당의 이른 사망은 율곡 선생에게도 큰 충격을 주어 잠시나마 불교에 심취하게 한 동기가 되기도 하였다.
천재는 요절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런 경향은 예술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악성으로 칭송받는 베토벤은 57세에 사망하였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칭송되는 모차르트는 35세에 요절하였다.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이중섭은 40세에 요절하였고, 독특한 화법을 구사하여 한국의 토속미를 화폭에 옮겼다는 박수근은 51세에 요절하였다. 현재 이중섭이나 박수근의 작품은 고가를 호가하고 있지만 모두 어려운 시절에 헐값에 판매되어 부호들의 소장품이 되었을 뿐이다. 지난 세기 이중섭 아들이 사기 사건에 휘말린 것도 가난에 몰렸기 때문이다.
한편 피카소는 기후가 온난하고 물산이 풍부한 바르셀로나에서 명예와 부를 마음껏 누리다 91세에 사망하였다. 본인이 아껴 소장하던 명작과 습작을 오백여 점 남겼는데, 이를 모두 바르셀로나시에 기증하였고 시에서는 피카소미술관을 지어 전시하고 있다. 매년 수많은 애호가나 미술학도들이 이를 보고자 바르셀로나를 찾는다.
천재들은 대체로 몸이 허약하고 생활이 불규칙하나 왕성한 활동으로 요절하기 쉽다. 피카소처럼 쾌적한 환경에서 규칙적으로 생활하면 뜻하는 바를 모두 이루면서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다. 타고난 허약 체질은 규칙적인 생활과 한의학으로 개선될 수 있으나 건강체질이라도 생활이 불규칙해지면 치명적인 질병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제세구민의 포부를 가진 이라면 특히 건강관리에 힘써야 뜻을 이룰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