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박성규 한의학 박사·예올한의원 원장
봄이 오면 여기저기 이팝나무꽃이 소담스럽게 피어난다. 이팝나무꽃이 한창일 때는 마치 이밥 한 그릇을 고봉으로 퍼 놓은 듯하여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다. 지금은 사라진 춘궁기에 서민의 허기를 위로하던 정겨운 꽃이다. 요즘은 가로수로도 각광받아 도심의 봄기운을 더욱 청량하게 한다. 자태가 맑고 고와 마치 조선백자를 대하는 듯하다. 이밥은 쌀밥의 별칭으로 예전에는 즐겨 통용되던 말이었다.
대부분 국가의 말기가 그러하듯이 고려말도 안으로는 국가 시스템이 붕괴되고 밖으로는 외적이 끊임없이 침입하여 내우외환의 위기에 봉착했다. 권문세가의 겸병 점탈 사패 등으로 농장이 확대되어 빈부격차가 극에 달하고 백성은 수탈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국가 재정은 바닥나 관료나 군인의 녹봉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였고 착취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곤궁해졌다. 극심한 혼란 속에서도 권문세가는 전국의 토지를 과점하여 자녀가 결혼하면 고을 하나를 상속해 줄 정도였다.
‘고려사’에 따르면, ‘농민이 사전의 조를 바칠 때 남에게 빌려도 다 충당할 수 없고 처자를 팔아도 갚을 수 없으며, 부모가 기한이 떨어도 봉양할 수 없다. 억울해 울부짖는 소리가 위로 하늘에 사무쳐서 화기를 상하여 수재 한재를 불러일으키니 호구가 텅 비고 왜구가 깊이 쳐들어와 시체가 천 리에 널려 있어도 막아낼 자가 없다’라고 하였다.
이에 정도전을 위시한 신진사대부는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당시 북으로 홍건적을 무찌르고 남으로 왜구를 몰아낸 상승장군 이성계를 추대하여 백성을 위한 국가를 건설한 것이 조선이다. 조선은 권문세가와 종교의 폐단을 일소하고 토지 개혁을 우선적으로 실시하여 대부분 농민들이 안심하고 경작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였고 백성들의 삶은 윤택해졌다. 그 결과 백성들은 쌀밥을 즐겨 먹게 되었고 이를 ‘이성계가 주신 밥’이라 하여 ‘이밥’이라 부르게 되었다.
쌀은 인구부양력이 가장 큰 곡물로 정기를 보하는 특성이 뛰어나다. 특히 우리 체질과 잘 맞는 곡물이어서 오랜 기간 주식으로 자리 잡았다.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경기도 일산과 김포에서 오천 년 전 볍씨가 출토되어 고조선 초기부터 벼농사를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벼농사가 고조선 국가 형성에 기여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쌀의 효용성을 인지하였기에 어려운 환경에서도 벼농사를 지으려 노력하였고, 일제 강점기 때는 추운 만주에서도 벼농사를 지어 벼농사의 북방한계선을 경신하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6, 70년대만 하여도 잡곡이 주식이었으며 이밥은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아침 한 끼라도 이밥을 먹으면 마을에서 부유한 편에 속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구미 문화에 매료된 많은 이들이 쌀보다는 밀과 육류를 좋아한다고 한다. 쌀 소비가 극감하여 벼농사보다는 밀농사를 권장하는 근시안적 정책도 거론되고 있다.
쌀과 김치가 주식이었던 80년대만 하여도 대장종양이나 대장암은 우리나라에서 희귀한 병이었다. 하지만 밀가루, 우유, 육류 등이 선호되면서 대장종양이 가장 흔한 질병이 되어 매년 종양 부문 1, 2위를 다투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도 산업 혁명 이후 밀가루, 우유, 육류 소비가 증가하면서 대장암 발병이 급증한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쌀은 밀보다 많은 측면에서 건강에 좋은 곡물이다. 특히 우리 민족은 쌀을 섭취하지 않고는 기력을 보충하기 어렵다. 쌀이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성인병을 유발한다는 것은 망언이다. 평소 쌀밥과 김치로 정기를 보하고 병약할 때는 쌀로 만든 흰죽으로 보양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지금부터라도 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널리 알리고 쌀 소비를 권장할 때이다. 춘궁기에 피어나는 이팝나무꽃처럼 매끼 이밥의 향기로운 자태가 우리의 밥상을 풍요롭게 하기를 더불어 국민 모두 좀 더 건강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