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자 대한간호협회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협회 간부와 간호사들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 집결해 “간호법 제정 약속을 파기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반드시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윤 대통령이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는 것은, 의료현장에서 직역 간 협업이 중요한데 간호법이 공포되면 갈등이 심화해 국민 건강에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또 간호사 인력이 의료기관 밖에서 일할 수 있게 되면 기존 의료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의료기관 내 간호사 인력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간호조무사의 학력 상한을 규정한 조항도 반대 이유다.

이에 대해 간호사협회는 간호법 제정에 긍정적이었던 윤 대통령과 여당의 입장에 대해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한다. 간호법은 여야 합의로 출발했고 국회법에 따라 2년간 4차례 법안심사 등의 적법한 절차를 통해 심의·의결된데다, 2022년 3월 2일에는 당시 원희룡 국민의힘 대선 정책본부장과 간호법 제정을 약속한 정책협약서를 체결했다는 것이다.

또 대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사무실을 방문해 “법안(간호법)이 국회로 오게 되면 정말 공정과 상식에 합당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저희 의원님들께 잘 부탁드리겠다”고 약속한 점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당선 이후 윤 대통령은 간호법과 관련한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고, 국민의힘은 ‘직역 갈등’을 이유로 법안 처리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간호사 처우개선 등을 담은 간호법의 핵심 쟁점은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제1조) 정한 부분이다.

그런데 의사협회 등은 ‘지역사회’라는 문구가 간호사 단독 개원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며 격렬히 반대해왔다. 그러나 간호법 제정안은 현행 의료법이 명시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번 사안은 정치적으로도 매우 민감하다.

윤 대통령이 지난 4월 초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간호사법까지 합쳐 취임 1년여 만에 벌써 두 번째 거부권 행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잇따른 거부권 행사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행정부가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하는 행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근간마저 흔드는 행위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윤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간호 업무의 탈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의사협회 등이 간호법에 반대해온 논리와 궤를 같이 한다. 그래서 간호사협회는 한쪽 편만 드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하지만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할 수 있는 거부권 행사는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야당과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적 행위 없이 잇따른 거부권 행사로 극단적 대치 구도를 고착시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대통령의 역할은 국가적·국민적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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