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박성규 한의학 박사·예올한의원 원장
의과 대학 인기가 최고조에 이르러 최고의 인재들이 의대 입시에 매달리고 있다. 건국 이후 줄곧 명문대학으로 군림한 서울대조차 지방의대에 인재를 빼앗기고 있다. 일류 이공계 대학에 입학한 학생도 의대 입시를 위해 재수 삼수에 도전하고 있고, 이조차 어려운 이는 외국 의대에 입학하여 의사가 되고자 한다.
수학 과학 경시 대회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인재조차 이공계 대학보다는 의대 입시를 목표로 공부한다고 한다. 사칙연산 외에는 쓸 일이 없는 의과 대학에서 이런 인재의 과학 재능은 묻힐 수밖에 없다. 일견 최고의 인재가 의학 연구와 임상에 임한다면 국민 건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으나 인적 자원에만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의료계의 파행뿐만 아니라 사회 퇴보만 유발한다.
의과 대학 입시 광풍은 안정된 직업과 고수익이 보장된다는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의료계에 만연한 과학 미신, 과잉 진료, 수술과 약물의 오남용, 불법 커미션, 공포 마케팅, 무분별한 보건의료 정책 등이 의료계 수익을 비정상적으로 확대해 왔다. 비정상적 수익 확대는 배금주의를 만연시켜 의료계 내에서도 소위 인기, 비인기 과목을 가르고 있다. 필수 의료 분야인 산부인과,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등은 전문의를 지원하는 이가 거의 없고, 수익이 많은 피부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등에 몰린다고 한다. 비인기 분야조차 소득이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것을 보면 의료계의 배금주의가 얼마나 심각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과잉 의료로 세계적인 악명을 떨치고 있는데 고수익을 탐하는 인재들이 영입될수록 의료계는 지금보다 더 파행적으로 운영되어 미국처럼 고비용 저효율 의료시스템으로 전락할 것이다. 의료계가 고수익을 추구할수록 공공의료는 퇴행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의료 기술의 발달이 국민 건강을 향상했다는 것은 거짓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를 거치면서 획기적으로 수명이 연장되고 국민 건강은 비약적으로 향상했다. 이러한 실적은 의료 기술 발달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경제 성장에 따른 삶의 질 향상으로 인한 것이다. ‘공업 입국’의 기치 아래 일구어낸 ‘한강의 기적’이 가장 크게 기여했다.
금세기 들어 이공계에 대한 홀대와 서비스 산업 발달을 기했던 정책으로 이공계는 서서히 외면되고 의료를 필두로 한 제반 서비스 산업이 급성장하였다. 그 결과 경제 성장은 둔화되고 이권 다툼만 난무하여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였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 이공계 출신 의원이 10프로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은 참담한 현실을 대변하며 산업 발전을 위한 법안은 기대하기 어렵다.
조선이 역성혁명에 성공하여 왕조를 굳건히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주요 산업이던 농업 발전에 임금과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 온 힘을 쏟았기에 가능했다. 반면 탄탄한 시스템을 갖추었던 조선이 말기에 이르러 급속히 대외 경쟁력을 상실했던 것은 임금과 인재들이 산업 발달보다 이권 다툼에 몰두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조선 말기 양상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의대 입시 광풍은 이공계로 진학하여 산업을 이끌어갈 뛰어난 인재들이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진로를 바꾸기 때문이다. 이공계로 향하는 물꼬를 다시 트지 않는 한 국가의 미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이공계 우대 정책과 더불어 젊은 인재들의 창업과 성공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 없이는 패망으로 향하는 흐름을 바꾸기 어렵다.
또한 해외 산업의 국내 이전, 수도권 산업의 지방 유치, 신규 지방 산업단지 조성 등으로 국토 균형 발전을 기하고 지방 산업단지마다 문화시설, 무상 공공 의대, 종합병원 설립 등 광범위하고 복합적인 정책이 실시되어야 나라와 국민 모두 건강을 도모할 수 있다. 몸통과 팔다리는 쪼그라드는데 머리만 커진 사람이 어찌 온전할 수 있겠는가? 나라가 온전해야 의료계도 지속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