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사장 이도영 박사 별세

충청일보사와 청주문화방송의 사장인 文軒(문헌) 李道榮(이도영) 박사가 22일 오후 3시 뇌일혈로 향년 6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1451일 충북 청원군 가덕면 노현리에서 출생한 박사는 2대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으로 홍익학원과 일신산업, 남한제지, 남한흥산, 한국원양어업, 흥익개발, 일신동양통신기주식회사 등의 대표를 맡아 오면서 言論(언론敎育(교육) 社會事業(사회사업)至大(지대)功績(공적)을 남겼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최애경 女史(여사)長男(장남) 경훈(在美·재미) 차남 석훈씨 등 23녀를 두고 있는데 영결식은 26() 午前(오전) 10() 홍익大學校(대학교) 校庭(교정)에서 學園葬(학원장)으로 거행되며 장지는 京畿道(경기도) 이천군 戶法面(호법면) 매곡리로 결정됐다. (하략) <8719·1973624일자 1>

 

50년 전 충청일보 624일자 1면에 실린 문헌(文軒) 이도영(李道榮) 박사의 부고기사다.

충청일보는 1946국민일보라는 제호로 창간했다. 초대 사장 겸 발행인은 김원근, 부사장 겸 편집인은 김동환, 편집국장은 홍승구씨였다.

충청일보는 올해로 창간 77주년이다. 23년 후면 영예로운 100주년을 맞는다.

195431일 이 박사는 폐간된 국민일보충북신보(忠北新報)’로 제호를 바꿔 사장에 취임했다. 취임 후 그는 사시(社是)불편부당, 향토문화의 계발, 도정편달, 농촌경제의 부흥으로 변경하고, 315일자로 신문발행을 속간했다.

다시 제호를 충북신보에서 충청일보로 바꾼 것은 1960815일이었다.

충북 청원군 가덕면 노현리 출생인 그는 문의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전 이미 동몽선습, 소학, 대학, 논어 등을 모조리 배운 총명한 소년이었다. 1927년 청주고보에 입학한 뒤 1929년 경성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로 전학하고 1932년 졸업했다. 1934년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수료했고 1938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교육자이자 기업인, 정치인이었다.

1956년 홍익대학을 인수하고 학교법인 홍익학원을 설립했다. 1962년 홍익공예고등전문학교, 1965년 홍익국민학교, 1968년 홍익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한 뒤 1970년 성암국민학교와 성북중고등학교를 인수하고 1971년 수도공과대학을 인수했다.

같은 해 홍익대학을 종합대학으로 발전시켰으며, 1972년 학교법인 계원학원(繼遠學園)을 홍익학원에 흡수, 합병시켰다.

19502대 민의원(국회의원)에 당선되고 1951년 헌법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1972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피선됐다.

1946년 이후 일신산업주식회사 사장, 남한흥산주식회사 사장, 한국원양어업주식회사 사장 등을 역임했고, 1969년 홍익개발주식회사 사장, 1970년 일신동화통신기주식회사 사장과 일신동화전자주식회사 사장 등을 지냈다. 1955년 한국무역협회 이사, 1957년 남한제지주식회사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1970년 대한체육회장상(체육진흥공로), 대통령표창(수출진흥공로), 1972년 문교부장관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사학의 진로1974년 홍익대학교 출판국에서 유고집으로 출판됐다.

/김명기 편집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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