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박성규 한의학 박사‧예올한의원 원장
우암 송시열 선생은 왜란과 호란을 겪은 조선 중기, 자학과 혼란 그리고 경제적 파탄으로 쓰러져 가는 조선을 바로 세우고자 노력했다. 선생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리지만 환란을 겪은 조선을 안정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전후 복구에 성공했기에 영정조의 문화 부흥이 가능했다. 국제 정세와 현실을 무시하고 허황된 북벌 야심을 키운 효종을 적절히 제어하여 내실을 기하도록 했고, 양란 이후 무너진 성리학을 다시 세우는데 전력을 다했다.
혹자는 선생을 사대주의자로 평하는데 이는 식견 부족이다. 선생은 중국을 사모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국기인 성리학을 바로 세워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도리를 공고히 하려 했다. 송나라가 북방 민족의 압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주자는 성리학으로 중화 문화를 지키려 한 것처럼 조선이 청에 굴복한 현실에 맞서 선생은 조선 문화의 부흥을 기하고자 주자 사상에 천착했다.
실제 선생은 명나라의 정치나 사상에 대해 극히 배타적인 자세를 견지했다. 이런 선생의 확고한 신념 아래 양명학은 조선에서 대체로 기피되거나 백안시되었다. 선생을 사대주의자로 평한다면 불교와 기독교 등 종교인들과 구미 사상가를 신봉하는 제반 지식인들 모두 사대주의자라 해야 할 것이다.
우암 선생의 부부유별은 각별했다. 선생의 부인은 항상 제안거미를 몸소 실천하여 선생을 공경했고, 선생도 먼 길을 나서기 전이나 돌아와서는 항상 부인에게 맞절하면서 안부를 물을 정도로 부인을 공경했다. 단편적인 일화지만 평소 선생 부부의 상호 존중이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논어’에 이르기를 ‘군자는 때에 맞게 적절히 행동하지만 소인은 기탄이 없다.’고 했다. 부부는 가장 친밀한 관계이므로 서로 삼가기 쉽지 않다. 기탄없이 대하기 쉬워 교양있는 사람도 배우자에게는 소인처럼 행동하기 쉽다. 이를 경계하여 성인은 부부유별을 강조했다.
부부유별을 남녀차별로 매도하는 것은 식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삼가기 쉽지 않은 관계기에 상호 존중을 통해 가정의 화목을 기하라는 뜻이며 선생 부부는 이를 몸소 보여줬다. 선생뿐만 아니라 조선 선비들 대부분 그러했다. 조선을 대표하는 선비인 퇴계 선생이나 율곡 선생 또한 부인의 모자람을 항상 온화하게 감싸고 존중하는 여러 일화를 남겼는데 이는 모두 부부유별을 실천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례 없는 인구감소를 겪고 있다. 혼인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이혼율은 증가하고 있으며 합계 출산율은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1994년 393,121쌍이 결혼하여 조혼인율이 8.7였던 반면 2022년에는 191,690쌍이 결혼하여 조혼인율이 3.7에 머물렀다. 결혼한 부부는 줄어드는데 이혼율은 오히려 증가해 왔다. 혼인 후에도 출산을 기피하여 1994년에는 721,185명 출산으로 합계 출산율이 1.66이었는데 비해 2022년에는 249,000명 출산으로 합계 출산율이 0.78을 기록했다.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국가소멸이 우려된다.
조선 말기에 성행한 한족 문화와 일제 강점기에 강제된 일본 문화의 영향으로 시집살이나 남존여비 등 차별적 요소가 마치 조선 문화인 것처럼 왜곡돼왔다. 우리 민족은 시집살이 문화가 없었으며 동시대 어떤 국가나 민족보다 월등한 남녀평등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구직 경쟁 상대이기에 남녀 갈등은 대부분 선진국이 겪고 있는 현상이지만, 이를 부추겨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선동가들에 의해 우리나라는 훨씬 심각한 상태에 이른 듯하다. 이런 풍토에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스트레스는 현대인의 건강을 해치는 주요 병인 중 하나다. 가족 불화 특히 부부 불화는 감내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다. 선인들이 몸소 보여주었던 부부유별은 이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훌륭한 지침이 된다. 인격 수양이 등한시되는 현실이지만 건강과 가정 평화를 위해서라도 조금씩 실천함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