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여러 모습으로 산다. 다른 짐승들은 주로 하나의 재주만 믿고 살지만 사람은 여러 갈래의 삶을 꾸려간다. 그래서 인생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한다. 진실과 거짓사이, 선함과 악함 사이, 그리고 아름다움과 추물스러움 사이 등을 넘나들면서 사람은 살아간다. 이렇게 넘나드는 틈바구니 때문에 사람은 잘사는 순간과 못사는 순간이 서로 얽혀든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많은 생각을 쏟게 된다. 그런 연유로 삶의 동기를 결과보다 더 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한다. 모든 동기에서는 마음이 어떻게 생각할까의 길을 터주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가름해 주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운에 속한다. 어찌 삶을 운에만 맡긴단 말인가? 삶만큼 소중한 것은 없으므로 잘 갈무리해서 잘 살아야 한다.
무엇이 잘 사는 것인가? 멍청한 사람은 어려운 삶을 그저 고민만하고 괴로워한다. 영리한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은 그 어려운 삶을 해쳐나가는 방법을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어진 삶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어진 마음은 모든 것을 사랑할 줄 안다. 그러므로 어진 것은 곧 사랑하는 것으로 보아도 된다. 어진 마음은 어머니의 품속 같다고 여겨도 된다. 슬픔과 괴로움, 어려움과 편안함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불행은 멀어지고 행복은 가까워지는 법이다. 일체유심조(一体唯心調)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산다는 것 내 마음의 밭 하나만 잘 가꾸면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어진 마음이 선한 사람을 보면 반가워하고 악한 사람을 보면 용서하여 다시 선한 자리로 돌아오게 한다. 악한 것이 선하게 되면 두 배로 아름답다는 것을 어진 마음은 아는 까닭이다. 이러한 어진 마음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사는 사람을 우리는 무척 그리워하게 된다.
마을에 불효를 범한 자가 생기면 덕석몰이를 했었다. 덕석몰이는 마을 사람들이 불효한 자를 덕석으로 둘둘 말아 매질을 하는 벌이다. 알몸에다 매질을 하면 몸에 상처만 날뿐 마음에 상처를 내기가 어렵다고 여긴 것이다. 덕석에 말려 매를 맞는 불효자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수모를 당하게 된다. 부끄러움을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 벌을 받게 된 불효자를 낳은 어머니는 남몰래 숨어서 눈물을 흘린다. 어머니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은 분노의 눈물이 아니라 불효한 아들이지만 용서하고 사랑하는 눈물이다. 이러한 눈물은 어진 마음에서 흘러나온다.
생각과 행동이 항상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면 어진 사람이 되는 것이고 생각과 행동이 항상 선하고 악함이 없으면 어진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가! 거짓을 멀리하며 진실에 머물고 악을 멀리하며 선에 머무는 것을 올바름이라고 한다. 올바른 것은 바로 어진 것의 그림자처럼 붙어있다. 어진사람은 길이 평탄하면 남을 앞서 가게하고 뒤따라간다. 그러나 길이 험난하면 자신이 앞서가고 남을 뒤따라오게 한다. 이로우면 남에게 주고 해로우면 자신이 감당한다. 그러니 어진사람은 욕심이 없다. 욕심이 없으므로 만족하다, 만족하니 생활이 즐겁다. 생활이 즐거우니 삶은 자연 행복해지는 것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