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칼럼] 오병익 충청북도교육삼락회장·아동문학가

'안개비 속을 달린다. / 누가 오라지 않아도 질주하는 행렬들, / 팔 벌려 모두 갖겠다는 허영은 아예 없어도 좋구나.'/ (김호숙, 오래도록 사랑하는 법)

 OECD 회원국 중 '사기 범죄율 1위' 기사를 읽었다. 우리 국민 100명(14세 이상)당 1명꼴로 해마다 사기를 당한 셈이다. 시인의 언어처럼 오래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일까. 그 중 전세사기로 보증금을 몽땅 뗀 피해자 여럿이 목숨까지 끊고 있다. 경매가 시작되면 당장 '집 빼'를 감당키 어려워서 일게다. 주로 20~30대를 속였다. 그들에 얽힌 협잡은 끔찍하다. "과도한 욕망이라는 감옥에 사로잡히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쫓다가는 탈옥에 실패한 죄수처럼 점점 깊은 곳에 다시 갇힌다"(정도언, 마음의 지도)더니. 

◇무지갯빛 하모니

# 이태석 신부는 교황청으로부터 서품을 받은 뒤 아시아 출신 사제로 처음 아프리카 수단 교구를 지원하였다. 오랜 전쟁으로 빈곤과 절망뿐인 곳에서 사제이기 전에 의사와 교육자로 학교 건물을 짓고 아이들을 돌봤다. 정작 암 덩어리도 꺾지 못한 '울지마 톤즈'의 휴먼스토리, 내 안의 이정표다.

# 전직 교장 송문규 선생은 299회 헌혈 천사로 국보급 인간애를 아우른다. '나이가 들며 혈액 성분 관계로 300회를 못 채웠다'며 오히려 미안해한다. '부전자전'을 복기한 아들이 아버지 목표치까지 보탰고 그의 일흔 교육일기는 다문화 교육, 청주시·청주교육지원청 공동지원 사업 '봉황송 온마을 돌봄공동체' 등, 문화가 낯선 아이들에게 나누는 삶으로 덮이고 있다.

# 세간이 떠들썩했던 오송지하차도 참사 사고 발생 당시 14톤 화물차를 몰고 진입 중 물이 차오르자 화물차 지붕에 올라 20대 여성 등 세 목숨을 구한 유병조 기사님, "누구라도 같은 상황이면 저와 똑같았을 것"이라며 나머지 희생자의 안타까움으로 숙연했다. 어디 그뿐이랴. 50년 넘게 변두리 예식장을 운영(경남 창원)하며 형편 어려운 1만4000쌍에게 무료 결혼식+ 주례를 지원한 백낙삼씨, 화재가 발생하자 마지막까지 남아 환자를 대피시키다 쓰러진 신장 투석 병원 간호사 현은경 천사 "순수 사랑, 이렇듯 의(義)로움은 K콘텐츠 중심축이 됐다. 

◇수구초심

세상은 아직 따듯하다. '한국인=정(情)'이라더니 필자의 셋째 형뻘인 부영그룹 82세 이중근 회장은 무려 수천 억을 배고픔(고난)과 눈물(역경) 그리고 땀(기업)을 함께해온 친족에게 고향 주민에게 초·중·고 동창에게 군대 동료에게 쐈다. 처음 언덕·처음 마음을 잊지 않은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랄까. 오래오래 사랑법도 마찬가지다. 비틀거려 넘어질 때 부축하고 일으켜 아름다운 문양을 채워줄 살가운 인연, 결코 특정인의 과제만 아니다. '사랑하면 닮고 미워하면 똑같아진다'했듯 대수롭잖은 것부터 버릇처럼 챙겨보라 누구나가 천사다.

추석이 추썩추썩 다가온다는 옛말대로 지독했던 더위와 기습 태풍도 언제 그랬느냐 싶게 고향 포옹을 준비한다. 누가 만든 명절인지 앞뒤 날짜를 헤아려 보니 꽤나 긴 연휴다. 아무리 변해도 그대로인 '물보다 진한 피'에 질릴 만큼 추석을 절여보라.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겉치레 인사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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