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입추가 지났어도 생활은 여름이나 다름없었다. 처서가 지나고 백로, 추분이 한참 전에 지났어도 여름옷을 그대로 입는 다거나 여름 신발을 신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방마다 선풍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여름 내내 쉬지 않고 가동한 에어컨도 청소는커녕, 커버도 씌우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되었다. 살림이며 의식이 고스란히 여름에 정지된 채 한로에 이르러서야 가을을 비로소 인지하게 된 것이다.

오곡백과가 여물고 있다. 은행알이 뚝뚝 떨어지고 옷깃을 여밀 만큼 바람이 차갑다. 가을을 가을이라고 여기지 못할 만큼 감각과 의식이 무뎌졌는데 도저히 바뀌지 않을 것 같던 끈질긴 여름도 결국 가을 앞에 맥을 추지 못하고 고리를 감추었다.

지난여름을 저주의 나날로 보냈다. 더워도 어찌 그리 더운지, 비는 왜 허구한 날 내리는지, 더위와 습기가 섞여 뭐라고 표현하기도 어렵게 갈피 잡지 못하는 날들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철이 바뀌면 살만할 거라는 희망 따위도 없이 막연히 견디던 날들이었다. 지인이 수해를 입었다거나 물에 갇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들리던 그즈음은 두려움조차 일었다.

날씨는 이변이고 전기료, 수도료가 무서우리만큼 치솟았다. 곳곳에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집 안에 있어도, 집 밖에 있어도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한발만 앞으로 디디면 낭떠러지 같고 지하차도는 의식적으로 피하고 수마가 할퀴고 간 강물 근처도 괴물 같아서 되도록 가지 않았다.

‘30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는다’ 해서 공손수(公孫樹)라고도 부르는 은행나무숲을 걷다가 은행알이 발에 밟혔다. 숲속이 쿰쿰한 냄새로 가득 차 상쾌하지 않았다.

가을이 되어 나무가 물들기 시작하면 전국의 은행나무길은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아산 현충사 은행나무는 단풍의 명소이고 곡교천 은행나무길도 명소로 손꼽힌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은행나무 열매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2억 년 넘게 생존하는 나무지만, 열매 냄새가 고약해서 배고픈 짐승이나 새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가로수로 심은 지역에서는 행인의 발에 밟혀 악취가 나 불쾌감을 주고, 보도와 차도에도 얼룩을 남겨 도시 미관을 해친다.

특히 서울시의 은행나무는 더 푸대접받는다. 지난 9월 초부터 25개 자치구에서 ‘은행 열매 채취 기동반'을 운영하여 열매를 조기 채취했다는데 익어 저절로 떨어져야 할 나무 열매를 강제로 떨구니 열매의 구실도 하지 못했다. 한때는 단풍이 아름답고 공기 정화 능력이 뛰어나며 병·해충에 강해 가로수로 심었다는데 지난 10년 사이 1만 그루 이상 사라졌다니 가로수 수종선택에 신중할 일이다.

이태원 사고 1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그날의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사고 전날부터 이태원 일대는 인파로 인한 이상징후가 발견됐었다. 그러나 이상 신호가 있었음에도 시민 안전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 밀려드는 인파를 통제할 경찰은 단 한 명도 배치되지 않았고 일이 터지자 대충 얼버무리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않으니, 은행나무 열매의 전략이라도 본받아 자신을 지켜내야만 한다. 고약한 냄새라도 풍겨 짐승의 먹이가 되지 않으려는 은행나무 열매처럼 야성을 키우고 독기를 품어야 나를 보호하고 지킬 수가 있지 않겠는가.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