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이강록 우송대학교 교수

최근 경제 관련 뉴스 제목이 매우 선정적이다. 불안, 어려움, 침체 따위의 단어에서 위기와 끝장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세계적 진영 경쟁과 국지적 전쟁 등이 주도하는 부정적 경제 요인이 우리의 살림살이에도 고통을 미치고 있으므로 경제에 대한 경고음들은 단지 신문지상에만 존재하는 과장된 어떤 것만은 아닌 듯하다.

전등이며 컴퓨터와 같은 전기제품을 끄고 다니라는 아내의 잔소리가 늘었고 공과금 용지를 열어보는 일이 약간은 초조한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식당에서 밥이라도 먹을라치면 “아니, 이 음식이 이 가격이 됐네!”라는 말이 입에 붙게 된다.

다행히 아내와 함께 경제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외식을 줄일 지경은 아니지만 아내나 나나 오랫동안 궁핍한 강사생활을 지내본 사람들이므로 우리의 걱정과 불안은 늘 아직 탄탄하지 않은 우리 자산 기반을 환기하거나 우리보다 덜 넉넉한 사람들에게로 향하게 된다. 우리 부부보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다거나 적게 번다거나 자산 기반이 약한 사람들에게 일상의 조촐한 이 외식이 우리보다는 더 부담스러울 테니까 말이다.

경제 관련 유튜브를 보다 보면 앞으로 경기는 더 나빠질 거라 전망하면서 대개는 이런 위기가 진짜 돈을 벌 기회라는 단서를 단다. 기시감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경제적 몰락이, 즉 사람들의 불행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행복이 되었던 시대가 있긴 있었다.

IMF시대를 모두들 경제적으로 고통을 겪은 시기로 기억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자산을 한탕 크게 불렸던 시기로 기억한다. 승자독식의 논리로 보면 취약해진 경쟁자들, 그런 경쟁자들이 몰락한 시대는 독점적으로 자산을 불릴 기회긴 하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상황에도 투자할 여유가 있다면 오죽이나 좋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위기 상황에 함께 휩쓸려 고통을 받게 마련이다.

그러니 위기 앞에서 우리가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말고 어려울 때일수록 이웃을 사랑하는 도덕적인 삶을 살자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IMF적 자신의 기업이 파산하는 마당에도 직원들의 월급을 걱정하는 사장, 그런 사장을 위로하는 성실하고 순한 직원들의 구슬픈 미담을 떠올리자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돌 반지를 내어놓는 젊은 부부들, 반 백 년을 끼고 지낸 금가락지를 내놓으면서 나라의 환란에 눈시울을 적시던 할머니의 감동적인 애국심을 떠올리자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우리는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이니 다시는 그런 애잔한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장자 내편의 대종사(大宗師)에 보면 물이 말라 물고기들이 입안의 물기와 거품으로 서로를 적셔주는 건 강호(江湖)에서 서로 잊고 있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물이 말라 죽게 생긴 상황에서 서로를 살리려는 미물의 희생과 몸부림이 귀하고 애틋해 보이지만 드넓은 강호에서 서로를 신경 쓰고 지낼 일이 없었던 때가 오히려 더 낫다는 표면적인 해석을 해볼 수 있다. 하물며 사람 일이야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이미 겪은 어려움을 다시 겪는 어리석음의 소치로 사욕을 채우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든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서로를 아껴야 한다든지 하는 생각에 머물면 안 될 것이다.

이미 아픔을 겪은 우리에게 현명함이 있다면 그런 경제적 불행의 조짐을 아는 것이고 다시는 그 파탄 속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미연에 막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또 적극적으로 불행을 막는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엄혹해졌다지만 세계는 여전히 열려있다. 열린 문으로 세상을 내다보고 우리의 살림살이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혹여나 문제들이 있다면 관심 갖고 옳게 해결되도록 마음 쓰고 필요하다면 애써 거들기까지라도 해야 한다. 아팠던 만큼 성숙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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