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김헌일 청주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지난여름, 성장의 중심 오창에 대형 직장 어린이집이 개원했다. LG 에너지솔루션(이하 엔솔)이 6월에 167명 수용 규모의 어린이집을 개원했다. 일자리를 찾아 오창으로 이주해온 부모와 아이들이 새 보금자리를 찾았다.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곧이어 7월에 주변 중소기업 연합 어린이집이 수용 인원 100명을 증원했다.
그런데 뜻밖의 생각지도 못한 현상이 발생했다. 이들 직장 어린이집 개원 전 오창지역 내 어린이집 수용 아동은 약 3,000여 명 수준이었고, 보육 대상 아동은 2,500여 명으로 충원율은 80% 수준이었다. 아동 수는 그대로인데 한 달 새 직장 어린이집 개원으로 수용 가능한 인원은 267명 증가했다. 아이들이 직장 어린이집으로 옮긴 후 지역 민간·가정 어린이집 충원율은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가뜩이나 저출산으로 아이들이 줄어 경영이 악화했는데, 직장 어린이집이라는 돌발 변수를 만났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내년 입소 대기 명단이 정원 수준이어야 하는데, 정원의 50% 수준이다. 일부 어린이집은 입소 확정이 1명뿐이다.
오창 민간·가정 어린이집 폐원 위기는 한두 곳 어린이집이 아닌 지역 전반에 나타났다. ‘양질의 직장 어린이집이 생겼으니 경쟁력 약한 어린이집 소멸은 당연’이라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동네 곳곳을 채워준 소형 민간·가정 어린이집 공백이다. 동네에 있던 어린이집이 폐원하거나 반 구성이 안 되면 당장 아이들이 갈 곳을 잃는다. LG엔솔 같은 직장에 다니지 않거나 자영업, 농업 등 종사자의 아이들은 원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동네 곳곳이 보육 소외 지역으로 전락하고 만다. 언제나 그렇듯 사회약자의 피해가 가장 크다. 유아 보육 세대는 구조적으로 경제 활동에 가장 취약하다. 출산 기피의 근본 원인이다. 결국 동네 민간·가정 어린이집 소멸은 저출산 악순환의 주요 원인이 된다. 더구나 오창은 성장 중이다.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이다.
성장기 교육·보육 수요는 언제나 그랬듯 민간이 책임을 맡아 왔다. 대규모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을 국가나 지자체가 즉시 시행하기 어렵기에, 인재 양성부터 시설 투자까지, 민간에 의지했다. 덩치가 크면 움직임이 둔하기에 의사결정이 신속한 덩치 작은 소규모 자본들이 움직인다. 그렇게 이 나라 유보육도 민간·가정 어린이집이 이끌었다. 지역 내 안정적 수요를 확보하니까 대형 민간 자본이나 공공 자본이 들어온다. LG엔솔은 내년 추가 증원을 추진 중이다. 당장 1~2년은 공급에 여유가 있겠지만, 이대로 동네 어린이집들이 문을 닫으면, 직장 어린이집과 공공 보육 시설로는 보육 수요를 감당해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한번 무너진 보육 시스템을 회복하려면 감당하기 힘든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민선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은 저출산 극복과 출산장려 의지를 열정적으로 표명해 왔다. 그러나 현장의 곪아 가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저출산 정책에 앞선 선진국은 보육 환경 개선과 인프라 확장의 필요성을 앞서 인식했다. 출산을 장려하고 안정된 보육을 이루기 위해서는 보육 인프라의 안정적 운영이 필수다. 보육 시스템 위기에 청주시의 정책 대응이 신속히 요구된다. 당장 수요분석에 근거해 직장/국공립 어린이집 증원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출산장려를 위해서 충북도와 함께 보육 사각지대를 메꿀 민간·가정 어린이집 공급망을 현상 유지 혹은 개선하고, 경영지원 등 구체적 대책이 즉시 시행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