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이강록 우송대학교 교수
근래 넷플릭스에서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리얼 버라이어티 콘텐츠인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로 만들어 공개했다. ‘오징어 게임’이 드라마로서의 흥행뿐만 아니라 심볼, 의상, 아이들 게임, 음악, 대사에 이르기까지 드라마의 다양한 세부 콘텐츠들이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던 점에서 착안해 드라마 게임을 실제 구현하는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우선 ‘오징어 게임’이 가진 다양한 성공적 요소들에 대해 그동안의 세평으로 되짚어 보자면 세련되고 다층화된 서사구조와 배우들의 연기력, 한국적 리얼리즘, 한국 영화가 가진 그로테스크한 자극성이 잘 드러난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자극의 역치가 절대적으로 높아진 시대임에도 시청자들이 예측 못할 잔혹한 장면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자극의 강도만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다. 잔혹한 고어물로는 이보다 더 수위가 높은 작품들도 이미 많다. ‘데스게임’이라는 장르물을 새롭게 열거나 이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도 아니다. 이 분야의 장르는 일본의 ‘데스게임’류의 장르물들이 이미 기원을 열었고 전세계적으로 보면 자극적인 설정에 유혈이 낭자하고 죽음을 놓고 벌이는 게임의 긴박감이 꽤 높은 작품들이 적지 않다. 자극의 역치로는 오징어 게임이 더 강렬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다.
여러 세평 중에서 현실의 부조리를 거침없이 드러내 보이는 한국적 리얼리즘의 매력, 그 현실 세계를 쇼가 될 수 있도록 자극적으로 담아내는 가공 능력에 많은 평자들은 무게를 두고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양극화된 현실 세계를 한국적 리얼리즘의 시각으로 반영하여 이런 생존게임이 개연성 있는 사건으로 일어날 수 있는 디스토피아를 재현한다. 등장인물들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져 회생이 불가능한 사람들로 사회구조적 약자인 여성, 노인, 탈북자, 이주노동자이거나, 몰락한 정리해고자, 사양산업 노동자이거나 또는 체제 안에서 영락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삶은 사회적 안전장치, 회생 시스템의 미비로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한다. 기훈이 그렇듯 사채까지 손을 대면 대개의 사람들은 위협과 폭력에 의한 불법 추심에 시달리고 인간적 존엄을 물론이고 생명에까지 위협을 받게 된다. 이들에게 남는 희망은 일확천금과 같은 운이다. 남은 생명을 걸고 도박을 하는 장소가 바로 이 오징어 게임의 세계이다.
그리고 이런 이들을 죽음의 게임에 던져놓고 서로 죽이는 잔인한 장면을 지켜보며 도박을 즐기는 또 한편에 인물들이 있다. 오일남을 위시해 가면을 쓴 VIP들이 그들이다. 돈이 너무 많은 이들은 권태라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들은 돈을 이용해 고통을 차단해 보려했지만 그럴수록 더 큰 권태에 시달렸고 이 권태를 몰아내기 위해 이들은 지배와 파괴 충동을 충족시키는 살인 게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취약계층을 비밀리에 설계한 탈법의 공간에 유인해 살인유희를 즐기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디스토피아는 그렇게 탄생한 세계이다.
이들이 욕망하는 쾌락은 낯선 것 같으면서도 매우 낯익은 것들이다. 로마와 같은 제국 정복국가 시민들이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노예 검투사의 데스매치를 관람하듯 은의 주왕이 달기와 포락지형(炮烙之刑)의 형벌을 놀이로 즐기듯 신의 지위에 올라 이들이 던져놓은 재화를 갖겠다고 인간들이 서로 죽고 죽이며 경쟁하는 모습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섬찟한 것은 시청자들도 어느 정도는 이와 같은 관음증적 시선을 공유하며 즐기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드라마 전체적으로 현실 세계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균형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는 서바이벌 게임의 스릴과 인간의 심리적 갈등을 훔쳐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이런 불행한 경쟁을 강요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결여되어 있다. 무한의 경쟁 앞에 드러나는 인간 심리적 갈등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이 리얼 프로그램이 불편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