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이장희 충북대 명예교수‧(사)이재민사랑본부이사장
최근 지인들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자주 나오는 말은 ‘그런 일이 있어?’이다. 즉, 뉴스를 보는 때가 없고 아예 외면하기 때문에 그러한데, 그럼 그 시간에 무엇을 보는가 했더니 세계일주나 다큐멘터리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사는 프로그램이나 본다고 한다. 왜 그런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물론 특정 사안을 두고 쟁점이나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은 도를 넘어선 전쟁과 같은 싸움의 연속이고 무조건 비판과 반대를 우한 일을 예사로 여기고 이러한 행태가 무슨 큰 자랑이라고 되는 듯 철면피 정치인이 너무도 많다.
전체주의에나 있을 법한 줄서기나 암묵적 강요가 판치고 있다. 그리고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는데,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아는 이들은 모든 것을 국민들을 위한 것이라는 가식속에 진정 국가나 사회를 위한 것인지 개인 영달을 위해서인지 스스로 반성해야 될 듯하다.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도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있어서는 아니 될 살육전을 벌이고 있고, 몇 년째 계속되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도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 알 수가 없다. 기후위기도 심각해 하루에 200m 이상의 폭우가 내리는가 하면 지진도 발생하고 겨울비에 폭설이 1m씩 쌓이는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일본이나 터키의 지진피해, 유럽의 폭우, 미국의 수습불가능한 토네이도, 북극의 심각한 기온상승으로 빙하가 녹아 해수면 상승, 여기에 중국이나 인도의 심각한 미세먼지가 암울한 소식을 더하고 있다. 겨울비와 폭설이 연이어 스키장은 물바다가 되고 12월에 개나리꽃이 피는 포근한 영상 기온이고 삼한사온이 아니라 삼한사미 시대라고 한다.
이러한 텍사스 결투 같은 기후현상 못지 않게 우리의 정치도 최후의 결투와 같은 눈뜨고 못볼 기현상을 보이고 타협이나 배려는 찾아볼 수가 없고 초등학생만도 못한 지리한 싸움에 넌더리가 난다. 그나마 내놓는 정책이라는게 28조원 포퓰리즘이나 재탕정책 그리고 돈퍼주는 공약 일색이다. 실로 재정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걱정되고 실로 재정건전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공약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세금을 거두면 된다는데 국민들이 세금이나 짜내는 소 돼지인줄 아는가 보다.
일 안하는 국회의원 실태를 보고도, 등원 안하는 이들이 각종 혜택은 다 누리고 있다고 한다. 이제 80일 후면 총선이 실시되는데 정책대안없이 중앙당만 쳐다보는 철새들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우리 정치가 여야의 극한대립 갈등고조 실종된 정치의식으로 곪을대로 곪아버린 상채기만 가득차 있는 상황이다.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국민들은 안중에 없는 듯한데 국민들은 국회의원이나 이정치인을 쳐다보기도 싫어한다. 미국의 80대 노인들의 대통령 선거를 경로잔치라고 비아냥 거릴 정도의 양심은 있는가, 변하거나 바꾸려는 시도가 없이 현실에 안주하려 하지 않는가 반성해봐야 할 시점이다.
중용은 과거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어정쩡한 것이 아닌 정(正) 과 반(反)을 초월하는 초극(超克)의 의미로 재해석된지 30년이 넘었고, 선악이분법은 자기멸실의 길로 가는 정신적 피폐를 가져올 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언론이 공정성을 상실하면 세상의 절망이 다가오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생각한다면 대한민국은 저출산이 아니라도 지속가능하기 힘들 것이다. 기득권에 갖혀 새로운 미래를 보여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의 청년들이 취업을 포기하고 그나마 소액 번돈이라도 코인이나 해외투자에 눈을 돌리는지 깊은 생각을 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많은 젊은 엄마들이 내 자식은 한국보다는 더나은 곳으로 보내야 한다는 자조섞인 말들을 많이 하고 있다. 이런 나라에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지난 총선때 코로나 지원금 영향으로 재미를 본 그때의 기억을 이번 선거에도 반복하려 함은 큰 오산이다. 이렇게 등돌리고 싸움만 할거면,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을 거면, 지역연고라고 맹종 투표할거면, 내편네편으로 싸울거면, 끼리끼리 모여서 싸움없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고구려 신라 백제로 영토를 나누는게 어떠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