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30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의결안을 상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킨 뒤 지난 19일 정부로 이송됐고, 국민의힘은 즉각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는 사실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다섯 번째 거부권 행사가 된다. 지난 20234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 516일 간호법, 121일 노란봉투법과 방송3, 202415김건희 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등이 거부권에 가로 막혔었다. 횟수가 지나치게 많은 것도 그렇지만,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김건희 여사 특검법등 이른 바 쌍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논란이 아직까지 수그러들지 않은 까닭이다. 그만큼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이 거부권을 주장하는 것은, 이 법안이 야당이 그간의 관행을 깨고 일방 처리를 한 데다, 특별조사위원회가 야당 편향적으로 꾸려질 수 있다는 점을 큰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담감을 희석시키는 일종의 당근책을 검토 중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배상 지원책이 그것이다. 유족들이 원하는 참사 추모 공간 설치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 거부권은 국회에서 이송된 법률안에 대통령이 이의를 달아 국회로 되돌려 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헌법상 권한이다. 대통령의 권한이니, 이를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몇 가지 리스크가 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헌법에 근거한다. 이 헌법이 가지고 있는 취지는, 국회와 정부 간에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조건이 선행된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려면 법률안의 위헌성, 집행 불가능성, 국익 불합치성, 오용 가능성, 행정부에 대한 부당한 정치적 압박, 법안이 시행되더라도 예산이 따라주지 않을 경우의 조건이 그것이다. 그런 경우의 거부권은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그동안 행사한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동조합법·방송법, 쌍특검법에 거부권 행사가 이 조건에 맞았는지는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더욱이 거부권 남용은 입법권의 무력화를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거부권을 행사하기 위해선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이는 삼권분립이라는 민주국가의 절대 명제를 역행하는 일이기도 하다.

전례를 비춰보면, 김영삼·김대중·문재인 전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를 남발하지 않았다. 거부권을 행사 자제는, 국회가 가지고 있는 권위를 인정하는 일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거부권이 남발되면 협치가 실종된다. 국회에서 이송된 법률안이 대통령 거부권에 의해 자꾸 좌초되면 국회 또한 정부에서 내놓는 정책의 입법화를 거부하게 된다. 악순환의 도돌이표가 되고 마는 것이다.

거부권 행사는 대통령 권한이지만,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 권한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행사돼야 하고, 국민적 뜻에 따라 행사돼야 한다.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당연히 민심 이반이 따른다. 이젠 그런 악순환을 멈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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