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지인이 파김치를 했다며 맛보라고 주었다. 양이 많지 않으니 더욱더 맛있었다. 밥 한 숟가락에 파 한뿌리를 얹어 먹는 맛이란. 그 어떤 고급 요리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식사 후 2주 만에 화분에 물을 주었다. 3월이 시작되는 날 겨우내 거실에서 월동하는 식물도 빨리 햇빛을 받게 해주고 싶었다. 성급하다 싶었으나 베란다에 내다 놓으며 물주고 난 후 바짝 흙이 마르도록 무심했다.
작년 여름 선물 받고 냉장고에 내박쳐둔 싹 난 통마늘도 쪽을 떼어 화분에 심었는데 어느새 싹이 올라왔다. 설 명절에 하도 비싸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다가 아껴 먹고 남겼던 대파도 화분에 심었는데 키가 훌쩍 자랐다. 김장철이면 대파를 넉넉히 사 마땅한 용기를 구해 흙에 심고 길러 겨우내 음식 재료로 썼던 친정어머니의 지혜를 흉내를 낸 것이다.
화분에 골고루 물을 주고 집을 나서니 3월 말에 이르도록 꽃봉오리를 물고 있는 형상을 한 목련의 겨울 눈도 비늘을 벗고 순백의 꽃잎을 드러냈다. 나지막한 아파트 화단의 산수유나무에도 노랗게 꽃이 피었다. 매일 오가는 길가의 도저히 필 기미가 없던 벚나무에도 몇 송이의 벚꽃이 피어 가던 발걸음을 붙잡았다.
올해는 춥고 흐린 꽃샘추위에 벚꽃이 꼭꼭 숨었다. 기후변화로 꽃이 피는 시기가 해마다 빨라지고 있었는데 왜일까. 벚나무는 꽃을 피우기 직전인 3월 기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또한 꽃을 피우기 위해서 햇빛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평년에 비해 이번 3월은 전국적으로 추웠고 흐린 날의 연속이라 벚꽃이 피지 못했다.
거리에 붉고 푸르고 노란 글씨가 꽃을 대신해 펄럭인다. 4월 10일에 있을 선거용 현수막이다. 조금 전 물주고 나온 대파가 다시 떠올랐다. 대파가 모든 것을 정리하여 이른바 대파 총선이라던 정치학자의 글이 생각나서다.
공산품, 농수산물, 심지어 전기, 가스, 수도료, 어느 것 하나 오르지 않은 것이 없는 고물가 시대를 사는 일이 힘들다. 마트에 가는 횟수도 줄이고 덜 먹고 덜 쓰는 것으로 겨우 연명하는 나날이다.
이런 때 마트에 나타난 대통령 일행은 우화 속 벌거벗은 임금님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지요?’ 현실 속 열 뿌리 미만의 파, 한 단 가격은 3, 4천 원, 심지어 그 이상을 웃도는데 875원이 과연 합리적이었단 말인가.
파는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불리는 이름도 다양하다. 하얀 줄기는 총백, 푸른 줄기는 총엽, 수염뿌리는 총수, 씨앗은 총실, 꽃은 총화, 포기 전체를 찧어서 나온 즙은 총즙이라고 부른다. 어느 부위도 약성이 좋아 마늘과 생강과 더불어 음식마다 빼놓지 않는 꼭 있어야 할 음식 재료이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파를 먹고 가정주부라면 다른 건 몰라도 파 가격만큼은 확실히 안다.
더해 여당의 한 국회의원 후보는 대통령의 말을 두고 ‘한 뿌리’였을 거라며 벌거벗은 임금님의 부끄러움을 가려주려고 했다가 오히려 더 큰 비웃음을 불러왔다. 이런 지경이니 이번 총선이 대파 총선이라는 묘사는 조금도 손색없다.
파뿐만이 아니라 오이, 호박, 시금치, 상추, 어느 채소 하나 오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다고 애써 지은 농부의 농산물을 무조건 싸게 팔길 바라지도 않는다. 필요한 농자재 가격이 올랐으니 농산물 가격도 오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가격이 싸면 합리적이라는 말, 그래서 몹시 거부감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