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눈] 임명옥 우송대학교 교수
외국 학생을 대상으로 ‘인성’ 강의를 하고 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자기 알기’와 ‘자기 보살피기’에 대해 설명한다. 학생들의 한국어가 충분히 유창한 것은 아니어서 어려움이 적지 않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필자의 흑역사라고 할만한 사진, 잘못, 상처 등을 끄집어내어 사례로 들 때가 있다. 간혹 필자의 어리숙함을 과하게 구체적으로 얘기하다 보면, 훅하고 뜨거운 부끄러움이 올라오기도 한다. 필자의 부끄러움이 클수록 학생들은 강의 핵심을 좀 쉽게 이해하는 거 같다. 그렇다고 부끄러움을 자초할 수는 없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뜻밖의 발견을 하기도 한다.
강의 첫 주에,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에 대해 물어본다. 학생들 대부분이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한국어가 부족해서라기보다, 자기가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물어보면, 생각도 안 해보고, ‘잘하는 거 없어요‘, ’다 못해요’라고 한다. 본인의 장점을 정말 모르는 걸까? 알지만 부끄러워서 말을 못 하는 걸까? 필자의 경험으로는 전자의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던 어느 학기에, 베트남 학생이 필자의 질문에 ‘장점이 하나도 없다’고 대답했다. 대답을 한 학생 바로 옆에 같은 국적 학생이 앉아 있었다. 보통 옆에 앉는 학생은, 친하거나 적어도 잘 알고 지내는 친구일 거라 생각하고 물었다. ‘옆 사람의 장점을 말해줄 수 있을까요’라고 하자,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잘생겼어요, 그리고 성실해요’라고 대답했다. 필자는 쏜살같이, 그 말을 받아서 ‘잘 생겼고 성실하다는 것을 이 학생은 아는데, 본인은 몰랐나 봅니다’라고 하니, 학생이 환하게 웃었다.
그 베트남 학생은 그날 이후 매우 적극적으로 기운 넘치게 공부했다. 옆에 앉은 학생이 툭 던진 두 마디 ‘잘생겼어요, 성실해요’를 알아들은 학생은 긍정적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친구가 장점을 말해 준 그 순간, 자신의 장점을 알아차리고, 신나고 즐겁게 생활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은 15주 동안 한눈팔지 않고 직진했고, 갈수록 더 잘생겨졌고 더 성실해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필자는 그 과정을 함께 하면서 또 다른 점을 발견했다. 친구의 장점을 무심히 말해준 학생도 똑같이 꾸준히 성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표정이 밝아졌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알아보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장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두 학생은 한 학기 내내 서로를 인정해주고 격려했다. 스스로와 서로에게 보내는 응원의 에너지가 필자에게까지 전달됐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다.
필자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는 학생들에게, 종종 위의 방법을 사용해 각자의 장점을 찾도록 했다. 그러면서 더 알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은 긍정적 결과를 얻는 데 선 조건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선 조건은 바로 교사가 해당 학생에게 장점이 있다고 ‘먼저’ 확신하고 옆 사람에게 질문한 것이다. 필자가 확신 없이 물어보면, 옆 친구의 장점을 말하지 못하거나, 상황이 엉뚱하게 흘러가곤 했다. 확률적으로 우연이라고만 할 수 없을 거 같다. 순간의 확신이 힘이 된다는 체험은 오랫동안 필자의 마음에서 맴돌다 제자리를 찾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