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후보자들의 위기감과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지난 1유연한 화해책을 기대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문 내용이 매우 강경했던 것에 대한 불안감은 매우 컸다.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혜성을 보면서 멸종을 예감하는 공룡들의 심정이라고 말한 국민의힘 의원 말은 그들이 체감하는 상황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이 같은 당내 부정적 반응은 총선을 목전에 두고 가뜩이나 정권 심판론에 밀려 악전고투하고 있는 상황인 까닭에 더욱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고 윤 대통령의 담화문이 틀린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만은 없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의료개혁 추진이 정치적 유불리와 무관한 국민 보건 정책이라는 것과, 의대 정원 증원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것은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개혁을 추진하는 이유가, 정치적 득실을 따질 줄 몰라서가 아니라 국민을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를 잘 알면서도 이해집단의 저항에 굴복한다면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공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워딩은 양날의 검과 같다. 의료계와의 협상의 문을 닫은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이날 담화문을 보면 ‘2000명 타협은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가장 민감한 부분의 접점 자체를 제거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역대 정부들이 (의사들과)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갈수록 더욱 공고해졌다지난 27년 동안 (과거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리지 못하고) 반복한 실수를 또다시 되풀이할 수는 없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의사들을 기득권 카르텔로 규정했다는 것은, 그들이 척결돼야 할 대상이요, 이겨야 할 적이라고 읽힌다.

의료계 반응은 격앙됐다. 대통령 담화에 의사협회는 입장이 없는 게 입장이라며 입을 닫았고, 교수단체에선 정부가 사태 해결할 의지 없다는 걸 확인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반발해 사직서를 제출 중인 의대 교수들은 이번 담화가 의·정 갈등을 더 악화시킬 거라고 입을 모은다. 수련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이 돌아오도록 설득하기보다 정부 논리를 반복해 설명하는 내용이 주로 담기면서 갈등 해소의 기회를 잃었다고도 했다.

전국 의대교수비대위 등 교수 단체가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이유가 주로 교육 여건 악화 등인데, ‘의사들의 반발을 밥그릇 싸움으로 몰려는 것이라는 반발도 나온다.

협상의 여지를 닫은 것으로 보이는 이번 담화가 갖는 두 가지 위험한 상황이 있다.

첫 번째는 목전에 둔 총선에서 여당에게 결코 이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의·정 모두 강대강의 충돌만을 고집해 국민의 생명권이 위태롭게 된 것은 결국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유연한 협상을 통해 혼란에 빠진 의료 현장의 정상화를 갈망했던 국민적 기대에도 부합되지 못한다. 지난 330일 충북 보은에서 발생한 영아 익사 사건은 의료현장이 정상화됐다면 살릴 가능성이 있는 생명이었다. ·정 갈등이 지속되면 이 같은 일은 시작에 불과하다.

대통령은 국정 운영자로서 일관성 있는 정책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또 다른 일면으론 정치인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정치의 기본 속성은 조율과 타협이다. 그것은 굴종이 아니다. 어느 것도 불변의 원칙은 없다. 정치적 영역에선 더욱 그렇다. 이제라도 타협을 통한 해결점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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