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기의 톺아보기] 김명기 충청일보 편집인·논설위원
이번 총선처럼 말이 말을 낳고, 또 그 말이 말을 낳는 ‘언어의 홍수’에 휩쓸린 적이 있었나 싶다. 가슴을 울리는 명연설이 더러 있는 것 같고, 귀에 쏙쏙 박히는 효능감 있는 연설도 간혹 있는 것 같다. 이와 반대로 또 어떤 연설은 허접스럽기 이를 데 없는데다, 듣기에도 민망한 것으로 보인다.
말은 자신의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말 한마디가 설화(舌禍)가 돼 스스로를 위협하기도 한다.
그래서 말은 칼과 같다.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이 될 수도, 사람을 죽이는 살인검(殺人劍)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말이 부정확하거나,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아예 입을 닫는 게 상책이다.
“아이와 집안 부인은 안 건든다”
인요한의 설화는 한 두 번이 아니다. 처음엔 ‘벽안(碧眼)의 한국인’인 까닭에 실수려니 용인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이다. 우리 말을 잘 알고 우리 말을 잘 쓸 수 있는, 어려서부터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다. 그래서 벽안을 핑계 삼아 변명의 커튼 뒤로 그를 숨겨줄 이유는 없다.
한 두 번은 ‘실수’일 수 있지만, 두 번 세 번은 ‘의도’이기 때문이다.
“제가 뉴욕에서 4년 살았다. 마피아 조직도 아이하고 집안 부인하고는 안 건든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을 두고 “다 지나간 일”이라며 그가 한 말이다.
우선, ‘다 지나간 일’이라는 단정은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이나 ‘명품백 수수 논란’은 아직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건이다. 검찰도, 법원도 아닌 자연인 인요한이 그걸 ‘다 지나간 일’이라고 선언할 수는 없다. 그런 권한이 그에게는 없다.
마피아 조직이 아이와 부인은 안 건들이는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 이야길 여기에 빗대선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늘 하던 말, ‘공정과 상식’, 그리고 ‘법 앞의 평등’은 예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멸문지화’라고 표현되던 조국 전 장관의 일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와 법원의 판결은, 마피아조차도 가족은 건들지 않는다는 ‘금과옥조’를 깬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는다
‘대파가 일파만파로 번져, 국민의힘을 대파(大破) 한다’는 이야기가 회자됐었다.
주지하다시피 윤 대통령이 하나로마트를 방문하면서 대파 한 단 가격 875원을 두고 합리적이라고 한 말에서 시작된 파장이다.
대통령이 파 한 단의 가격을 알아야 할까? 알아야 한다. 서민들을 힘겹게 만드는 장바구니물가가 어떤지 알아야 그에 공감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몰랐다면 크게 잘못된 일일까? 모를 수도 있다. 대통령이라고 세상물정 세세한 것 모두를 어찌 알 수 있을까.
그래서,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될 일이었다. 몰랐다면 아예 언급을 하지 않았으면 될 일이었다. 875원을 ‘합리적’이라고 말을 하면서부터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래저래 넘어가는가 싶었을 즈음, 이수정씨의 뜬금없는 ‘감싸기’가 또 일을 키웠다. ‘한 단이 아니고 한 뿌리’라는 말은 또 다시 민심에 불을 지폈다. 퍼포먼스까지 벌여가며 일을 더 크게 벌이더니, 종국엔 ‘잠시 이성을 잃고 실수했다’며 사과했다.
거짓은 거짓을 낳는다. 거짓을 덮기 위해선 또 다른 거짓이 필요하고, 또 다른 그 거짓을 덮기 위해선 또 또 다른 거짓이 필요하다. 거짓의 악순환이다. 세상일이 다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