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립대 총장들이 요구한 ‘의대 증원 축소 조정’을 수용했다. 그동안 ‘2000명 증원’에서 요지부동이었던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모양새다. 충북대와 충남대 등 6개 비수도권 국립대학이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을 늘어난 정원의 50~100%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모집하게 해달라”는 건의를 받아들이면서 부터다.
하지만 의정갈등은 미궁을 벗어나지 못하는 분위기다. 의사단체들이 ‘원점 재검토’가 아니면 무의미하다며 일제히 단체행동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주부터 출범하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도 불참 의지를 표하면서 의정갈등이 장기간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더욱 큰 악재가 생겼다.
의대 교수들이 지난 3월 25일 집단 제출한 사직서의 민법상 효력이 이번 주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미 의료 현장은 임계치를 넘어선 듯 보인다. 전공의들이 떠난 빈자리를 교수 등이 메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들마저 의료 현장을 떠난다면 의료대란은 불보듯 뻔하다.
이런 와중에 의대 교수가 또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의료 대란과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대학병원 50대 여교수가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전공의의 빈 자리를 메우느라 당직을 서온 교수들의 체력이 한계를 넘어섰다는 토로가 쏟아진다. 지난 2월 전공의의 집단 이탈 이후 지난 3월 부산대병원 안과 교수에 이어 현직 의대 교수의 두 번째 사망 사례다. 의사들 사이에선 “이들의 사망은 의료대란을 초래한 정부 책임”이라는 날선 반응이 나온다.
정부가 한 발짝 ‘양보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의료계가 더욱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건 윤 대통령의 지난 담화문 발표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담화문은 완고했던 입장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기조였고, 이에 따라 의료계는 거센 반발과 함께 정부에 대한 신뢰를 접었다. 더욱이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 발언엔 일종의 자괴감까지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인 의료계의 입장 또한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은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자율 모집’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의대 증원은 시대적 요구다. 서로 강수만 남발해선 안 된다. 서로의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국민들이 불편을 겪어왔던 시간이 얼마인가를 되새겨 봐야 한다. 응급 환자들과 중증 환자들이 느꼈을 생명의 위협을 같은 무게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도 처음부터 견고하고 촘촘한 로드맵을 마련했어야 했다. 증원을 하려면 교수진 확보와 시설 확충, 의료 공간 마련, 의료진 처우 문제 등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했어야 했다.
국민들은 냉정하고 준엄하게 현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 국민들이 인내의 임계치에 다다르면 그 폭발성은 짐작하기 어렵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거센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민이 후순위로 밀려나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협상 과정이 어떻듯, 결과가 어떻게 도출되든 서로 상대방 탓만 하며 시간이 자꾸 지연되면 국민들은 용납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