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김헌일 청주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1400억 원 넘는 자금이 투입된 ‘2023 새만금 세계잼버리’에 대한 세계스카우트연맹 보고서가 공개되었다. 국내 언론도 앞다투어 보도했다. 독립적 외부 전문가 패널로 구성된 연구진은 새만금 세계잼버리를 ‘실패’로 결론 내렸다. 이 보고서는 조직위의 불분명한 책임 구조, 5명의 공동위원장 체제, 전문성 부족한 한국 정부의 지나친 개입과 소통 부재를 준비 부족과 위기 대응 실패의 주요 원인이라 했다.
보고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실패 원인을 비교적 상세하게 분석했다. 이전 대회의 경우 대개는 개최국의 스카우트 조직이 책임 운영하는 것과 달리, 새만금 잼버리는 한국 정부가 대규모 자금 지원과 지침을 제시하는 바람에 사실상 조직의 운영자가 되었고 한국스카우트연맹의 권한은 축소되었다. 정부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었으니 예산 집행 주무 담당 부처는 당연히 사사건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세계스카우트연맹의 개최지 선정단계에서부터 새만금은 매우 ‘위험한 지역’으로 평가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토지 매립을 포함한 대규모 나무 심기와 인프라 시설 구축을 세계스카우트연맹과 약속했으나 조직위는 지키지 않았다. 안전, 보안, 의료, 식량, 위생, 도로, 교통, 기상 변화 대응 등에 있어서도 약속한 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 준비단계에서부터 사실상 모든 당사자 간 신뢰가 무너졌다. 심지어 2022년에도 발생 가능한 위험을 세계스카우트연맹이 재차 경고했다. 개막식 당일 최소 70여 건의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조직운영위원회의 안전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고, 책임자도 찾을 수 없었다. 공동위원장인 김현숙 장관 등 윤석열 정부가 비판받는 이유다.
윤석열 정부는 사업을 계획하고 시작한 문재인 정부 탓으로 돌렸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2015년 일본은 간척지에서 390억 원 수준으로 개최했다. 물가 인상을 고려해도 500억 정도면 될 것을 새만금 잼버리에는 1171억 원을 마련했다. 상당액은 전라북도 SOC(사회간접자본) 자금으로 사용했고, 호남에 정치적 기반을 둔 민주당의 문재인 정부가 저질렀다. 전라북도는 새만금 세계잼버리를 지역 SOC 개발을 위해 중앙정부 자금을 사용할 명분으로 삼았다. 물론 KTX 등 SOC를 통해 낙후된 강원 산간 지역 균형 발전 추진력을 이루어낸 평창동계올림픽 사례도 있다. 그러나 새만금 세계잼버리는 달랐다. 전라북도와 중앙정부는 새만금 잼버리를 두고 동상이몽에 빠졌었다.
멀쩡한 사회단체가 허술한 정부 지원금에 매여 변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스카우트연맹은 자신들의 전문성과 정체성을 돈 앞에 내던졌다. 경실련 설문조사에서 역대 최악의 사업으로 2023 새만금 세계잼버리를 선정했다. 2012년 3월 잼버리 유치가 꿈이 시작된 이래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거물 정치인으로부터 자잘한 동네 정치세력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잔칫상에 숟가락 얹기는 끊이지 않았다. 국제적 망신이 된 역대급 메가 이벤트 참사에도 여야 정치권이 입을 다무는 이유다.
지금도 전국 민선 지자체가 앞다투어 이벤트를 노리고 있다. ‘2027 충청세계대학경기대회’가 대표적이다. 사업 방향성을 잃은 ‘무리’한 이벤트 개최는 결국 독이 되어 돌아온다. 세계잼버리 실패로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은 낙인찍혀버린 명칭 ‘새만금’의 지역 주민일 것이다. 이벤트 개최는 분명한 기회다. 그러나 이해 당사자는 물론 지자체 중앙정부 모두가 ‘무리’ 없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이권과 정치적 셈법보다는 모두를 위한 ‘실효’를 우선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