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충청기행- 예산 한국문인인장박물관

[충청일보] 인장(印章)은 개인이나 관직, 장서 등의 표식으로 문서, 서화에 찍어 증명으로 남기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일명 도장이라고 말한다. 보통 나무나 돌, 수정, 금, 뿔, 상아 등에 조각하며 고대의 인장은 신성한 영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단군 설화에 보면 환인이 그 아들 환웅에게 천하를 다스리고 인간 세상을 구하게 함에 있어 천부인(天符印) 세개를 주어 보냈다고 되어있다. 천부인이 최초의 인장인 셈이다. 삼국사기에는 국새가 왕권을 상징하고 사직(社稷)이 아무 탈없이 평안하기를 기원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인장은 매우 중요한 징표였으며 자필로 쓰는 싸인에 비해 지금도 그림이나 도서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같은 인장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다. 충남 예산군 광시면 운산리에 우리나라 최초의 인장박물관이 있다. 한국문인인장박물관이 그곳이다. 이곳에는 문인들의 인장이 주로 전시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주변에는 그 유명한 예당저수지가 있으며 건축박물관, 일엽스님과 이응로 화백의 흔적이 배어있다는 수덕사, 물 좋은 덕산온천 등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곳이다. 인장박물관을 찾아가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곳곳에 박물관으로 가는 이정표가 서있고 길도 잘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이라 하면 보통 규모가 크고 청원 경찰이 나서 감시하는 곳으로 인식이 되어 왔는데 한국문인인장박물관은 농촌에 건립된 별장처럼 소박했다. 정원에서 자라는 갖가지 꽃들과 밤, 대추, 감 등 유실수가 관람객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직 덜 자란 잔디들이 안개비에 촉촉이 젖어 편암함을 느끼게 했다.

벼들이 파랗게 넘실대는 들길을 지나 인장박물관에 들어서니 관장인 이재인 교수 내외가 반갑게 맞아준다. 이 관장은 경기대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 퇴임을 한후 이곳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1주일에 두어번 서울로 올라가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거나 화백문학 주간으로 잡지 편집을 한후 대부분의 시간을 이 박물관에서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가 인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10대 문학 소년이었을 때였다. 16살 되던해 헌 책방에서 구입한 김소월 시집에서, 소월이 스승에게 드리는 글을 쓴 뒤 서명하고 낙관을 찍었는데 그 낙관이 더없이 보기좋은 예술품으로 생각 되었다. 그후 20대가 되어 소설가 오영수씨의 제자로 그의 집을 드나들게 되었는데 서재에서 희귀한 인장을 발견하게 된다.

거북이가 정교하게 조각된 인장이었는데 하도 신기하여 갈때 마다 어루만지니 스승인 오영수씨는 그 인장을 가져가라고 했다. 그것이 이 박물관에서 가장 귀한 인장 중에 하나인 흥선대원군의 인장이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이 교수의 인장 수집은 반 백년이 다가오고 있다. 그야말로 자나 깨나 인장 사랑이다. 서천에 살고있는 있는 시인의 인장을 얻기 위해 택시를 탔고 갔는데 그냥 갈 수 없어 고기를 사들고 가게 됐다. 하지만 그 분은 나가서 보신탕이나 먹자고 하여 다시 택시를 타고 나와 보신탕을 사드렸다. 인장을 하나 얻는데도 이처럼 정성이 필요했으며 이같은 인장 사랑이 지금의 박물관을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곳에는 한국 근, 현대 문인 인장을 비롯 근대도서 판권 인지, 고려시대 관인, 조선시대의 관인, 세계 각국의 인장, 우리나라 국세, 추사의 낙관까지 총 망라되어 있다. 백옥으로 예술적 가치가 높다는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인장에다 이광수, 김동인, 김유정, 이효석, 현진건, 박종화, 노천명, 서정주, 조지훈 등의 인장이 전시되고 있다. 희귀 인장으로는 흥선대원군 인장을 비롯 덴마크 국왕실 문장, 추사 김정희 낙관, 엘리자베스 여왕이 보내준 스탬프 등이 있다.

어림잡아 약 1000여과가 넘는다. 모두 유명인들의 인장과 낙관인데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인들의 인장이 모두 있으니 역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참으로 가치있는 박물관이라 아니할 수 없다.

본관 2층에 들어서면 나무 도장으로 채워가고 있는 대한민국 지도 모형이 눈길을 끈다. 입장료 대신 찾아 오는 문인들에게 막도장을 하나씩 가져오라고 하여 대한민국 지도를 만들고 있다. 아직 북한 지방을 다 채우지 못하고 있어 만나는 문인들마다 막도장 인장을 가져오라 청하고 있다.

박물관 주변에는 다양한 모양의 문학비도 눈에 띈다. 이 지방의 문인들인 김광희, 윤향기, 이해문, 우제봉씨 등의 문학비와 시비가 세워져 있고 한창 단장중인 산책길을 따라 이들 시비가 세워지고 있다. 앞으로 3층을 증축하여 세미나실을 만들에 시 낭송회 등을 이곳에서 열 계획이다.

최근에는 문인들이 사용하던 필통을 모우고 있다. 낙관만큼이나 애지중지했던 필통이어서 그곳에 담긴 사연도 풍성하다. 이 관장은 앞으로 인장보다는 필통을 모우는데 주력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문인인장박물관은 다양한 볼거리로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올것으로 기대가 되는 곳이다. 글·사진=조무주 대기자

▲ 한국문인인장박물관 전경. © 편집부


▲ 박물관을 개관한 이재인 경기대 교수. © 편집부


▲ 지역 문인의 시비. © 편집부


▲ 석조각 작품의 표지석.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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