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고령자 조건부 운전면허 도입’을 하겠다는 정부의 발표 때문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65세 이상 고령자는 운전 능력에 따라 야간, 고속도로 운전을 금지하는 등 운전 허용 범위를 달리하는 조건부 면허를 발급하고 실질 운전 능력을 평가해 허용 범위를 설정하는 방식이 유력하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소식이 알려지자, 노인층의 반발이 거셌다. 발을 묶는다, 사회 갈등을 조장한다, 생계형 운전자는 어쩌자는 것이냐 등의 비판이었다. 필자 또한, 운전하지 못하면 일을 할 수 없으니 이 무슨 일인가 싶었다.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이 ‘2024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대책’을 발표하면서 ‘고령 운전자 운전 자격 관리, 운전 능력 평가를 통한 조건부 면허제 도입 검토’라는 내용을 발표했다. 정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의하면 “고령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면서도 보행자 등의 교통안전을 위협하는 고령자 운전 자격을 제한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라는 것이다.
반발이 커지자, 경찰청은 특정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가 아니다. 라며 말을 바꾸었다. 뒤늦게 의료적, 객관적으로 운전자의 운전 능력을 평가한 뒤 나이와 상관없이 신체, 인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교통사고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운전자만 대상으로 한다고 해명했지만, 발표 하루 만에 말을 번복하고 수습하려는 꼴이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작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고령자 운전면허 관리제도의 해외사례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고령의 운전자에게 더욱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고 조사되었다. 해외에서는 이미 고령자에 대해 운전면허를 제한하거나 갱신 자격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70세 이상 운전자에게 운전면허 재심사를 받는다. 의료 진단에 따라 주행 능력 평가도 치러야 하며 지역 주행시험을 거쳐 거주지 내에서만 운전이 가능한, 제한 면허 제도가 있다. 일리노이주는 75세 이상은 4년, 81세에서 86세 이상은 2년, 87세 이상은 매년 운전면허를 갱신해야만 한다.
일본도 70세 이상은 고령자 강습을 수강해야 하고 75세 이상은 인지기능 검사와 운전기능 검사를 받아야 한다. 또한 2022년에는 비상제동 장치가 탑재된 차량만 운전할 수 있는 한정면허도 신설되었다. 그 외 호주나 뉴질랜드도 75세 이상은 운전이 가능한지 의료와 실기로 평가해 면허증을 갱신해주거나 운전자에 따라 지역 내 운전만 가능한 제한된 면허를 발급해준다.
우리나라는 경찰청과 지자체 별로 고령자의 운전면허증 반납을 유도해 왔다. 약 10만~30만 원 상당의 현금이나 대중교통 카드, 지역화폐를 제공한다는 등의 대책이 있으나 설득력이 없다. 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택시나 화물차 종사자 대부분이 고령 운전자라서다.
나이가 들면 신체나 인지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사실은 보편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과 평가도 없이 오로지 나이 먹었다는 이유로만 운전도 하지 말라는 따위의 정책에는 누구라도 찬성하지 못할 것이다. 늙는 것도 서럽거늘 아무 대책도 없이 생계까지 끊으려고 하니 참으로 한심한 똥 볼 차기이다.
똥 볼 차기가 거듭되고 있다. 해외직구 금지 정책은 사흘 만에 철회했고 이제는 쿠팡 자체브랜드 PB를 건드리려고 한다. 고물가 시대를 견디려고 소비자는 다만 몇백 원이라도 싼 제품을 찾아 온라인 공간을 헤매는데 들쭉날쭉 제멋대로인 이 나라 정책은 배가 산으로 올라가고자 함이 아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