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칼럼] 김진웅 수필가
간밤에 세차게 내린 비 때문인지 대기질이 좋고 바람도 시원하다. 비 오기 전엔 연일 30도 안팎의 때 이른 더위에 시달렸는데 아주 산뜻하고 쾌적하다. 산 위에서 만나는 바람은 마치 소슬바람같이 선선한 천연 에어컨이다. 매주 월요일 등산하는 친구들과 낙가산과 것대산에 올라 자연의 섭리와 혜택을 배우고 만끽하며 우리 고장 문화유산자료도 만난 뜻깊은 날이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처럼 내가 오른 산만 생각 말고 전체적인 크나큰 시야로 보고 싶다. 우리나라 산은 백두산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금강산을 지나 남쪽으로 이어지다 태백산 부근에서 방향을 틀어 내륙 쪽으로 뻗어 속리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이어진다. 그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 부른다. 내가 오른 것대산은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갈라진 산줄기가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까지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의 산 중 하나라는 것도 알 수 있어 기쁘다.
김수녕양궁장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숲에 우리의 미래와 희망이 있다.’라는 용정산림공원은 다음에 가기로 하고 낙가산 방면으로 향한다. 낙가산이라는 지명은 관음보살이 머문 인도 남쪽 보타 낙가산(普陀洛迦山)에서 유래되었다니 뜻깊고, 남쪽 기슭에 충청북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천년고찰 보살사(普薩寺)가 있어 자랑스럽다.
낙가산 연둣빛 신록이 나날이 싱그러운 녹음(綠陰)으로 바뀌고 있다. 자락 길을 걷다 보니 자연이 만든 등받이도 있는 바위의자가 있어 앉으니 용좌 같다. 대체로 가파르고 계단도 많아 힘든 곳이지만 야자매트가 깔려있고, 바람도 시원하고 숲도 아름다워 어느새 낙가산 정상(483m)이다. 좀 쉬었다가 것대산으로 향한다.
것대산 가는 길은 완만하고 폭신폭신한 오솔길이라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걷고 싶을 정도이다. 육각정 쉼터가 있는 것대산(484m)에 올라선다. ‘세종실록지리지’ 등 옛 문헌에는 것대산이 거차대산(居次大山), 거질대산(居叱大山) 등으로 검색된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참으로 으뜸이고 놀랍다. 남쪽으로 상당구 용암동 쪽 풍경부터 북쪽으로 청원구 오창 일원까지 장쾌하게 전망이 펼쳐진다. 야경은 더욱 탁월하다는데……. 정상은 것대산 활공장이다. 이 활공장을 활을 만드는 공장인 줄 알았던 때를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온다. 그러기에 한자(漢字) 교육도 필요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청주자랑 100가지 중 하나인 것대산 봉수가 있다. 관심을 갖고 보니 하나하나가 새롭다. 안내판을 거듭해서 읽으며 많은 것을 배워 흐뭇하다. 청주 것대산 봉수는 충청북도 문화유산자료이다. 청주 것대산 봉수는 경남 남해에서 출발하여 서울 남산에 이르는 노선 중 문의 소이산과 진천 소이산 사이를 잇는 봉수이다. 조선 시대에는 별장 1명, 감관 5명, 봉군 25명, 봉군보 75명이 소속되어 봉수를 운영하였다. 안내판에는 진천 ‘소이산’으로 기재되었는데 필자가 진천군 홈페이지 등 여러 자료를 분석하니 진천 ‘소을산’이 정확할 것 같다.
것대산 봉수는 조선 영조 때 일어난 이인좌의 난과 관련된 전설도 있다. 반란을 일으켜 청주성을 점령한 이인좌는 한양으로 소식이 전해지지 않도록 병사를 보내 봉수를 점령하고 봉수지기였던 목 노인을 살해하였다고 한다. 이를 본 목 노인의 딸 선이 낭자가 대신 불을 지피려 하였지만, 그녀마저 반란군에게 목숨을 잃었고, 결국 그녀의 정혼자 백룡 총각이 반란군과 격투 끝에 불을 지펴 한양으로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것대산 봉수는 1895년 봉수제가 폐지되면서 사라졌다. 이후 문화재의 원형을 찾으려는 시민들의 노력 끝에 2009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산행을 마치고 귀가하여 문화재청의 새 이름으로 금년 5월 17일에 출범한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을 검색하니 안내판보다 더 상세히 나와 있어 반갑다. 봉수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 수단이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烽) 밤에는 불빛으로(燧) 신호를 보냈다.
5개의 봉수에서 적군이 나타나면 두개, 적군이 국경을 침범하면 4개, 전투가 벌어지면 5개를 작동시켰다니 통신이 미흡하던 시대에 국방을 위하여 고심한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낙가산과 것대산에 올라 자연과 벗하며 힐링하고, 우리 고장 문화유산자료도 배운 뜻깊은 산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