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업이 잘 안된다며 울상을 짓는 그이를 위로한답시고 시장구경이나 가자고 졸랐다.시장 뒷골목에는 포장마차가 나란히 늘어서서 알전구 빛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했다."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 추가! 뼈있는 닭발도!"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안에서 거나하게 취한 취객의 주문소리가 들렸다. 뼈 없는 닭발은 많이 들어봤어도 뼈 있는 닭발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에게 한 번 들어가 보겠느냐고 그이가 눈짓으로 물었다. 술은 잘 못 마시지만 분위기를 느껴볼 기회다 싶어 내가 먼저 얼른 들어갔다. 방금 전 까지 턱 밑에 붙어 있던 한 움큼의 피로가 뭉텅 잘려나가는 기분이었다.

포장마차 안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사람들로 꽉 찼다. 사람들은 입에다 술도 털어 넣고 상스러운 욕지거리도 털어 넣느라 시끌벅적 했다. 사람들 입에서 술 냄새, 담배 냄새가 풀풀 거리며 우리가 앉은 자리까지 날아왔다. 지글지글 타고 있는 닭발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피워대는 담배연기 때문인지 포장마차 안은 뿌연 연기로 가득 찼다.

우리는 소주 한 병과 뼈있는 닭발 한 접시를 주문하고, 삐걱 이는 탁자를 마주하고 앉아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말없이도 무수한 많은 말이 오고 갈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주문한 소주와 닭발이 나왔다. 얼큰한 닭발 하나를 입에 물고 쓴 소주를 마시니, 그제야 사람들 입속에서 나오는 술 냄새, 담배 냄새 속을 뚫고 비집고 나오는 희망(希望)이라고 불리는 녀석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 자. 한 잔 하자고. 그깟 사업이야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거지. 앞으로 잘 될 거야. 그러니 너무 기죽지 말라고."

그 녀석이 우리를 달래며 한 잔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사업이 안 돼 늘 찡그렸던 그이가 포장마차 안의 분위기 때문인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허허거렸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 녀석의 변죽에 걸려들은 우리는 의자를 당겨 자리 하나를 마련해 주었다. 녀석은 우리가 건네는 소주를 염치 좋게도 넙죽넙죽 잘도 받아 마셨다. 살이 무참하게 벗겨진 닭 뼈가 쌓일수록, 소주병의 바닥이 들어날수록, 배속에선 소주와 닭발의 교접(交接)에 난리도 아니었다. 후끈 후끈, 우당탕탕, 교성 또한 요란했다. 그네들의 교접(交接)에 내 얼굴까지 벌게졌다. 일어서려는데 어지러워서 그만 탁자에 부딪히고 말았다. 비틀거리는 나를 그이가 부축하고 포장마차를 나왔다. 지나갈 때는 요란스럽게 우리를 호객하던 알전구들도 우리가 나올 때는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그이와 내가 포장마차를 나올 때 까만 밤하늘에는 이미 금이 가고 있었다. 그 틈새로 햇살 한줌 달려들면 밤새 건진 희망(希望)이 달아날 것 같아 우리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소주 한잔으로 더워진 가슴에 그만 그이에 대한 자잘한 투정이 다 녹아버렸다. 대신 아침 내내 설사를 해댔다. 주량이 소주 반잔인 내가 너스레떠는 희망(希望)이란 녀석에게 넋이 나가 그만 두 잔이나 마신게 탈이 났나보았다.아! 까짓것 아무려면 어떠랴. 내가 이미 그이를 몽땅 이해해버린 이 마당에.



/권영이 증평군청 기획감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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