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2024년 제 36회 국제예술사위원회(Comité International d'Histoire de l'Art, 이하 CIHA) 총회가 6월 23일부터 28일까지 프랑스 리옹에서 개최되었다. 필자도 이번 CIHA 총회에 발표자로 참석하였다. CIHA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사 국제기관으로 이 기관에서 여러 나라의 학자들이 모여 학술대회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18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미술사 올림피아드’라는 구어적 표현을 사용하다가 반 세기 후에 미술사에 대해 국제적인 논의의 장을 구축하는 공식 CIHA가 탄생하였다.
CIHA는 예술 활동과 창작에 대한 역사적, 방법론적 연구를 발굴하고, 국제회의를 활성화하여 전 세계 미술사가들이 영구적으로 연결되게 돕고, CIHA의 지원을 받은 미술사 활동에 대한 보급을 촉진하고, 정보를 홍보하고 전파하며, 교육과 연구 방법을 개선하고 데이터베이스나 참고문헌, 사진 등의 연구 자원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CIHA는 거의 100년 동안 매 4년마다 전 세계 미술사의 현황을 공유하는 미술사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해왔다. 올해 리옹 총회는 프랑스예술역사위원회(CFHA)와 프랑스국립미술사학회(INHA)가 공동으로 주관하였다.
2024년 CIHA 총회는 ‘물질과 물질성matière et matérialité’을 학술행사의 주제로 선정하였다. 물질과 물질성은 모든 시대, 모든 문화의 유물에 대한 개념, 생산, 해석 및 보존에 내재되어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이들 개념은 이론적인 반성을 불러일으켜 왔다. 물질은 더 이상 고정되어 활동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되며 유동적이고 활력 있는 행위성을 지닌다. 물질의 속성이 만들어내는 효과에서 비롯되는 물질성 또한 고정되거나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환경과 수용의 맥락에서 파악된다. 물질성은 질감, 표면, 무게, 공간의 확장, 몸짓의 흔적, 물질적 효과 등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예술 작품의 실현과 물질적 인식을 뒷받침하는 기술적, 문화적, 사회적 과정을 모두 포괄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올해 CIHA는 물질과 물질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장을 마련하였다.
나는 이번 행사에 프랑스 글쓰기와이미지연구센터(CEEI)에서 ‘글쓰기와 이미지 : 재료의 불안정성과 저항성’이라는 주제로 준비한 세션에 참여하였다. 이 세션의 두 의장인 로랑스 당기와 마리 로레이야르는 물질은 고유한 물리적 특성을 갖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창조자는 그것이 무엇이든 항상 물질과 투쟁한다며 이 세션에서 물질성과의 관계에서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물질의 불안정성과 저항성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고 주제 제안 취지를 밝혔다.
이 세션에서 나는 한국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예술가 고암 이응노(1904-1989)의 1970년대 ‘문자추상’ 작품들을 중심으로 동양의 서예와 서양의 회화, 글과 이미지, 물질성과 형태, 글자와 테두리 등의 다양한 층위의 상충적 요소들 사이의 상호 간섭과 융합에 대해 살펴보고 그 미학적 효과에 대해 소개하였다.
이번 CIHA 총회는 행사 기간 동안 1650명이 방문한 가운데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의 기조강연과 미학자 디디 위베르만의 강연을 비롯하여 1000명의 발표자들이 준비한 800가지 주제의 미술사 토픽 발표와 북 페어, 저자들의 사인회, 다이넬 스포엘리가 기획한 디너파티 퍼포먼스와 행사 마지막 날의 여러 문화 예술, 역사 유적 답사 투어 등의 풍요로운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문화 간, 연구자 간 다채로운 횡단 매개적 연구 교류와 협력의 기회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