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공장 세계 최대 대농청주공장 준공
單位工場(단위공장)으로는 世界(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大農(대농·사장 朴龍學·박용학) 淸州工場(청주공장·공장장 孫海東·손해동)이 12일 준공됐다.
淸州市(청주시) 복대洞(동)의 淸州工團지역 옆에 18만坪(평)의 垈地(대지)에 세워진 이 맘모스 工場은 총 건평 6만4천2백37坪으로 4만9천5백70坪의 工場 건물을 비롯, 기숙사·從業員(종업원)식당·사무실 등의 附屬(부속)건물을 지니고 있어 單位 工場 규모로는 世界 최대의 紡織工場(방직공장) 규모다.
工場 건물의 크기만도 서울運動場(운동장) 메인 스타디움의 8배가 되는 大農 淸州공장은 지난 70년 봄 착공 이후 滿(만) 4년 2개월만에 工場 본관건물이 완공된 것이며, 금년 말까지엔 附屬건물의 완공과 機械(기계) 설치를 끝내는 한편, 현재의 從業員 4천3백명이 7천5백명 線(선)으로 늘어난다.
18만7천2백56추의 방적시설을 갖춘 이 工場의 올 輸出(수출) 실적은 2천2백27만7천3백불로 來年(내년)도의 施設計劃(시설계획)인 1억5천만불을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관계 실무자들의 전망인데 지금까지 이 工場 建設(건설)에 투입된 資金(자금)은 內資(내자) 90억1천5백만원 外資(외자) 5천9백87만여 달러에 달한다. (하략) <9043호·1974년 7월 14일자 1면>
1980년대 초 청주 복대동에 있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도저히 참기 힘든 악취를 경험하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분처럼 고약한 냄새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건 양반 축에 속하는 거였다.
화학 성분을 내포하고 있었던, 형언하기 힘든 그 악취는 서청주에서 출발해 바람을 타고 복대동과 사창동까지 뒤덮곤 했다. 그 악취의 발원지는 대부분 대농공단이었다.
지금이야 그랬다간 난리가 나겠지만, 그땐 그 악취를 견뎌야 하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서울에 구로공단이 있었다면, 청주엔 대농공단이 있었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아가씨들은 대부분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정 형편 상 상급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고 열심히 방직기계를 돌리며 고향 노부모에 돈 몇 푼 보내줘야 하는 우리들의 누이였다.
그 팍팍한 삶 속에서도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대농공단 내에 있는 양백여상에서 그들은 못다 한 공부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그곳에도 사람 사는 향기가 있었다. 그 향기가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 산업화를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1955년 양백 박용학이 설립한 ‘대한농산’이 모태이다. 초기에는 농업 및 무역을 주로 하면서 1963년 일본 도쿄도 등 3곳에 해외지사를 설치한 후, 1968년에 태평방직 및 금성방직을 쌍용그룹으로부터 인수해 방직업에까지 손을 뻗었다. 1973년에 대한농산-태평방직-금성방직-한일제분 4개사를 통합해 ‘(주)대농’으로 출범시켰으며, 1975년 청주공장을 준공한 뒤 해운대비치를 합병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모기업이 부도나면서 이듬해부터 회사정리절차를 밟았다. 2005년 신영그룹에 인수됐고, 2006년 복대 대농공장을 폐쇄하여 이전했다.
지금은 SK하이닉스 등의 대기업이 충북 경제의 주축이지만, 그땐 대농이 충북 경제를 견인하는 요체였다. /김명기 편집인·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