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김헌일 청주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현지 시각 13일 오후 6시 15분경, 펜실베니아 유세장에서 발생한 총격 소식에 전 세계 언론이 집중했다. 표적이 전직 미국 대통령이자 차기 강력한 대권 주자인 트럼프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총격 피해자가 ‘위험한 쇼의 주인공’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곡예사 트럼프’이기에 수많은 사람이 ‘자작극’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 자체도 극적이었다. 선거 유세 중 총격을 받고 주저앉은 트럼프는 1분여 만에 일어나 두 주먹을 들어 올렸고, 지지층은 열광했다. 한편의 액션 영화 같았다. 순간 새겨진 ‘강인한 미국 지도자’의 이미지는 그의 재선을 의심하기 어렵게 했다. 경쟁자 더구나 민주당의 바이든은 코로나19 확진으로 유세를 중단했고, 급기야 21일 후보 사퇴를 알렸다. 민주당에서 누가 나오든 현재로서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은 커졌다.

세계 각국, 각 기업은 신속히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빴다. 트럼프 재선은 ‘대한민국에 악영향’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가 ‘트럼프 재선 공포’에 떨고 있다. 유럽연합 지도자들은 물론 각국 지도자들도 트럼프 재선을 ‘위협’, ‘위해’ 등으로 표현했다. 당장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부터, 김정은의 북핵까지 국제정세는 심각한 변화가 예상된다. 트럼프는 집권 당시 EU와 안보 동맹은 이어갔지만, 무역에 있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극동 아시아는 한미일 공조와 북한, 중국, 러시아 외교 모두 예측 불가다. 우리는 물론 일본 역시 대미(對美) 무역 마찰은 피할 수 없다. 트럼프는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 노선을 걷고 있기에 미국을 제외한 국제사회 누구도 그의 재선을 바라지 않는다. 미국에도 장기적으로는 득이 될지 확언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미국은 트럼프를 원한다. 트럼프가 재선한다는 것은 ‘미국’이 트럼프의 ‘고립주의를 원한다’는 증거다. 2017년 트럼프 집권 즈음과 2008년 오바마 집권 즈음 미국은 전혀 다른 나라다. 오바마는 미국 경제 부흥을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특히 중남미 히스패닉계 이민자가 급증했고 값싼 노동력으로 최하층 일자리를 장악했다. 유사한 형태로 히스패닉계에 밀린 흑인은 백인의 일자리를 장악했고, 백인은 일자리를 잃었다. 인구구조, 경제는 물론 미국 사회 자체가 변화했다.

역사적으로 스포츠는 사회, 문화를 투영한다. 미식축구,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등 미국 종목 중심의 프로스포츠 시장에 오바마 집권 후 중남미 최고의 스포츠 축구가 3위권으로 성장한 것은 미국 변화의 대표적 사례다. 결국 분노한 미국 백인은 ‘위험한 곡예사 트럼프’를 탄생시켰다. 우리에게 트럼프는 이상한 사람이지만, 미국 유권자의 필요와 욕구를 정확하게 공략한 트럼프의 당선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러나 트럼프는 분명히 ‘신(新)냉전’ 시대를 열었다.

현재 대한민국 역시 미국의 길을 따라 걷는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서부터 시작된 극단적 진영 갈등은 멈출 기미가 없다. 진영 간 갈등을 넘어 진영 내 갈등도 ‘막장드라마’다. 대한민국에도 트럼프를 모방하는 정치인들이 활개를 치며 불투명한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어느 원로 정치인은 ‘대한민국 정치에 도리(道理)가 사라졌다’라고 한다. 도리를 상실한 극단적 의사결정과 행동은 결국 갈등을 넘어 ‘곡예하는 괴물’을 만들게 된다. 대한민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우리 사회는 트럼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상식(常識)과 중용(中庸)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미국의 전철(前轍)을 밟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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