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공광규 시인의 ‘담장을 허물다’라는 시를 좋아하게 되었다. ‘뷰 맛집’ 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내 집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어떠냐에 따라 집값이 달라진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강 뷰’의 로망을 대부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가격 상승에 대한 유혹이 있을 테고, 동네가 뒷 받침해주는 자만도 한 몫 할 것이다. 가끔 서울에서 사는 이들은 서울특별시에 산다는 얘기보다는 강남에 산다, 압구정동에 산다, 대치동에 산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하물며 천안에서도 ‘신불당’에 산다는 말로 꼭 집어 자신의 거처와 사회적 지위를 동일시하려는 의도를 보이는데 신불당의 집값이 서울서도 알려져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고향에 돌아와 공시가격 900만 원짜리 흙집의 담장을 허물고 나서, 시인이 누리는 환상적인 풍경이 눈에 본 듯 선하다. 담장에 가로막혔던 눈이 시원해지면서 육백 평 텃밭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백 살 된 느티나무가 수십 평 그늘을 거느리고 마당 안으로 들어오고, 풍년초 꽃이 하얗게 덮인 언덕의 과수원과 금강으로 흘러가는 냇물과, 사방 푸른빛이 흘러내리는 월산과 청태산까지 시인의 소유가 되었다고 했다. 하루 낮에는 노루가 이틀 저녁엔 연이어 멧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러 갔고, 겨울에는 토끼가 먹이를 구하러 내려와 방콩 같은 똥을 싸고 갈 것이라고도 했다. 저절로 자족한 웃음이 나왔다.
우리 집은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왼쪽에 두고 마을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뒤로는 산도 있고 몇몇 주택이 있어서 언덕 허리쯤 되는 곳이라 아늑한 편이다. 동쪽 편 좀 더 높은 곳에는 마정리 저수지가 바라보이는 전원주택 단지가 있어서 우리 집 동쪽 고창을 통해 보면 배나무 과수원과 전원주택이 그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동네와는 높은 축대로 가로막혀서 왕래는 할 수 없는 먼 이웃이다.
연일 장마가 이어지는 바람에, 기와는 올렸는데 마당 공사를 끝내지 못해서 어수선했다. 그래도 비바람, 햇볕 피할 데가 생겼으니, 손 없는 날 밥솥 하나 들고 자잘한 식기류 몇 개, 집안에 들였다. 에어컨까지 작동되니 밭일하다가 잠시 쉬다보면 금세 땀이 들고, 돗자리 위에 누워서 천장을 보면 쭉쭉 뻗은 서까래 모습에, 밭고랑에서 굽은 등이 저절로 펴지는 느낌이 든다. 서까래가 풍기는 향에 취해 스르르 잠이 온다. 그렇게 한숨 자고 다시 풀밭에 들어서면 처음처럼 새로운 힘이 생긴다.
소나기를 만나 집안에 들어가서 마당 너머 풍경을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비용 때문에 담장을 만들지도 못하고, 대문도 없지만, 공 시인의 ‘담장을 허물다’라는 시를 읊으면서 담장을 만들지 않을 것을 다시 결심한다. 과수원이 보이는 맞은편 언덕과 설핏 보이는 저수지 수면, 그 곳으로 늘 흘러들어가는 시냇물, 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니는 길을 사이에 두고 이어지는 논과 밭, 과수원 능선들. 그리 넓지 않은 대지를 내 것처럼 이어주는 풍경들을 굳이 담장으로 막을 필요가 없다는 결심에 쐐기를 박는다.
기왓장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수도꼭지를 틀은 듯 세차다. 맑은 모래가 비춰지던 시냇물이 한 시간여 사이에 흙탕물로 넘실대는 것이 보인다. 장마가 끝나면 주차장과 마당 토목 공사가 완성될 것이고 이곳으로 거처를 옮길 것이다. 열다섯 평, 작은 한옥 마루에 서서 우리 부부의 칠십대를 다독여줄 풍경을 지그시 바라본다. 넋 놓고 낙수 구경을 하다가 서둘러 채비를 했다. 빗속에서 밭을 메기는 글렀고, 윗동네에서부터 곤두박질치듯이 밀려오는 빗물이 도랑을 넘어 길을 덮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공광규 시인의 시 한편이 수천만 원 담장 공사비를 아껴주고 더 큰 풍경을 들여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