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어휘는 문화적 전통의 상징이며 예술적 기교의 반영이다.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일부 지식인들 가운데 광복절을 '해방기념일'이라 쓰는 사람이 있다. 사전의 의미와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보면 분명 맞는 말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에게 강탈당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일제와 투쟁했지만, 미국과 영국 소련의 힘에 의해 일본이 항복했기 때문에, 우리가 일제치하에서 해방된 것이다. 실제가 그렇다고 해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했다. 긍정의 힘이란 말이 유행했었다.

광복이란 말을 쓴 것은 주체적 자율적으로 성취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적극성과 자긍심을 높일 수 있다. 해방이라는 말은 피동적 타율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의미가 강해, 소극성 자괴심을 느끼게 된다.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의 처음 제목은 '푸로토늄의 외출'이었다. 제목을 바꾸고 나서 작자와 소설의 인기가 달라졌다.


- 스스로 '빛을 되찾다'

'광복'이란 '빛을 되찾다'는 뜻인데, 일제에게 잃었던 국권의 회복했다는 비유적 의미로 썼다. 이렇듯 같은 내용을 기품있게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우리민족이 오래전 부터 지녀온 격조 높은 예술적 표현력이자, 고수준의 문화적 전통이다.

첫째, 삼국유사에바람을 풍백, 비를 우사, 구름을 운사라 인격화했다. 바람을 '우서방'이라 표현하여 그 전통을 잇고 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쳐갈 때 '우' 하고 소리가 난다 하여 우서방이라 했다. 필자의 고향가족들은 그렇게 썼다.

둘째, 쥐를 서생원, 까마귀를 효조, 개를 견공, 지렁이를 토룡이라 미화했다. 필자는 이를 창용(創用)해서 구더기를 미룡(米龍)이라 표현했다.

셋째,이규보의 국선생전은 술, 이곡의 죽부인전은 대나무, 이첨의 저생전은 종이를 의인소설로 썼다. 괴산군 문법리에 살았던 이상동(1907∼1985)을 증평군수라 불렀다. 6,25동란 때 피난을 갔는데 풍채와 인물이 좋아, 현지사람들이 군수를 지낸 분 같아 보인다고하자 동행인들이 증평군수라고 농담삼아 한 말이 별호가 됐다.


- 정제된 우리말의 미학

넷째, 순대를 보라. '닭똥집'은 맛은 좋은데 직설적 표현이라 그 노란 색이 연상되어 기분이 좋지 않다. 필자가 어린시절 어머니 정순례님은 '말대감'이라 썼다. 그 어원을 여쭤보지는 못했으나 우리가족들은 그렇게 썼다. 추리하건데 '마지막에 있는 대감'이라는 뜻으로 인격화한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민들레를 금은화, 수국을 불두화, 연꽃을 군자라 했다. 여섯째, 이런 정제되고 고아한 예술적 표현미는 문학에 발현된다. 송시열은 '파곡'이라는 시에서 '물은 청룡이 되어 흘러가고 사람들은 푸른 절벽을 따라 지나다니네'라고 했다, 유치환은 '깃발'을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 했다. 오성복은 사기막 용추폭포가 있는 이름없는 산에 연리지가 있어 사랑산이라 이름을 붙여주었다.

언어는 식견과 인격을 반영한다. 해방기념일이 아니라 광복절이다. 한일합방일이 아니라 경술국치일이다. 뒤의 두 용어는 우리의 유구한 문화적 전통과 예술적 표현미를 발휘한 어휘로 자주성과 적극성 그리고 자기반성심을 고취 앙양하게 해주는 탁언이다./이상주 중원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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