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백 사태' 이후 현장 간호사 10명 중 6명이 병원 측의 일방적인 강요로 전공의 업무를 대신하면서도 관련 교육은 1시간 남짓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기관은 전체의 39%인 151개 기관에 불과했으며, 이들 시범사업 참여 의료기관에서 진료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는 1만 3502명이다.
특히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대상 의료기관이면서도 이에 참여하지 않는 병원이 61%에 달해 이들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경우 법적인 보호마저 받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상급종합병원에 채용됐으나 지금까지 발령이 무기한 연기된 신규간호사가 76%에 달하며, 대부분의 대형병원들이 내년 신규간호사 모집 계획마저 없는 것으로 조사돼 간호대학 4학년 재학 중인 예비간호사들이 고용절벽에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한간호협회가 지난 6월 19일부터 7월 8일까지 종합병원과 전공의 수련병원 등 387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실태 조사' 결과다.
또 간호사 10명 중 6명은 병원 측으로부터 전공의 업무를 강요받아 수행하는 가운데,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간호사는 법적인 보호마저 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현장 간호사들은 환자 안전사고 발생에 대한 두려움과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업무 수행으로 인해 많은 심적 부담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조사에서 현장 간호사들은 "점점 더 일이 넘어오고, 교육하지 않은 일을 시킨다"거나 "시범사업 과정에서 30분∼1시간 정도만 교육한 후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고 힘든 상황을 토로했다.
또 "수련의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는데 업무 범위도 명확하지 않고, 책임소재도 불명확한 데다 업무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도 따로 없어 수련의의 업무를 간호사가 간호사를 가르치는 상황"이라며 현장 상황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편, 의료공백 사태 이후 병원들은 경영의 어려움을 이유로 신규간호사 발령마저 무기한 연기하면서 신규간호사 발령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상급종합병원은 5년 평균 1334명이 증가했으나 올해는 오히려 194명이 줄었다. 종합병원 역시 지난 5년 평균보다 근무 간호사 수가 2046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병원급 이상 전체 간호사 증가 인원도 5년 평균의 65% 수준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지난 13일 현재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조사에 참여한 41개 의료기관의 경우 올해 발령할 예정 인원을 8390명 선발했으나 지금까지 발령을 하지 못한 신규간호사가 전체의 76%(6376명)에 달했다.
특이 이들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31개는 간호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예비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규간호사 모집 계획조차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현재 간호사 국시를 앞둔 4학년 간호대생들은 채용인원이 줄어 취업 경쟁은 심해지고 휴학을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취업절벽에 내몰리고 있다.
간호협회 탁영란 회장은 "이번 실태조사 결과에서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체계가 너무나 허술하고 미흡하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정부 시범사업 지침에는 '근로기준법 준수'라고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지만 의사 파업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탁 회장은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의료 공백 사태 이후 현장을 지키고 있는 간호사에 대한 적정한 보상체계도 마련해 주어야 한다"면서 "더 이상 간호사에게 희생만을 강요받지 않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국회에서 간호법안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이득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