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당신 삶의 앞을 예감하셨던 것일까. 어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한 윗마을 효자 이야기를 하면서, 당신만큼은 꼭 아들이 보는 앞에서 세상을 뜨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그러나 끝내 그러지 못했다.

와수리까지 오토바이를 태워 보내면서 중대장이 한 말이 기억난다.

누구보다 난 김 상병 깊은 심지를 믿어. 세상에 어머니 돌아가신 것만큼 슬픈 일이 있겠는가만, 슬프면 그 슬픔 그대로 받아들여. 그리고 자넨 그 슬픔을 딛고 설 거야.”

다정다감하면서도 원리원칙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었던 ‘FM 중대장은 김용현 대위였다.

 

곁에 두고 싶어 서무병으로 임명

중대장은 유능했고, 유연했으며, 결기가 있었다. 중대원들 사이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 중대장님이 장군 되는 건 떼어논 당상일 거야.”

세월이 흘러 그는 지금 국방부 장관이 됐다.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과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대통령 경호처장을 거쳤다.

페바에서 GOP로 부대가 이동한 뒤 중대장은 나를 서무병으로 임명했다. 곁에 두고 싶었던 것이었다.

아마도 그건 중대장이 내게 갖게 된 첫 인상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19866월 신병교육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받았을 때, 중대는 사단 지휘 하에 사격을 하고 있었다. 나도 곧바로 투입돼 사격을 했다.

사로에서 모두 20발을 쏘게 됐다. 18발을 쏴 16발을 명중했는데, 19번째 사격은 격발이 되지 않았다. 손을 들고 통제관을 찾았다. 그는 소령이었다.

무슨 일인가?”

사격 중 격발이 되지 않습니다. 탄창이 불량한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조치를 내려주십시오.”

어떤 조치를?”

격발이 안 됐으니 두 발을 다시 쏘든지, 20발을 처음부터 쏘게 해주십시오.”

이런 맹랑한 친구를 봤나, 격발이 안 됐다면 그게 자네 탓이지 나 탓은 아니잖은가. 그리도 전시에도 격발 불량이라고 재사격을 해달라고 할텐가.”

지금은 전시가 아니고 훈련 상황입니다. 훈련은 전시를 대비하는 것이고, 완벽한 대비를 위해선 상황에 따라 여지를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자대부대로 배치 받으면서 곧바로 사격장으로 왔기 때문에 탄창의 불량을 알 수 없었습니다.”

허허, 참 기가 막힌 친구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중대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통제관님, 저 친구 당돌하지만 용감하지 않습니까, 한 번 기회를 더 주시죠? 저런 친구, 포상휴가감이라 생각되는데요.”

 

원리원칙 중시하는 FM중대장

그러나 어찌됐든 재사격은 없었다. 포상휴가도 없었다.

중대장이 내게 물었다.

그런데, 자네 얼굴에 피가 많이 나네?”

격발할 때 어깨가 이격돼 그런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중대장은 손수 화장지로 피가 흐르는 코 언저리를 닦아 주었다. 그리곤 웃으며 말했다.

참 재밌는 친구로군. 나 자네 중대장 김용현 대위네. 앞으로 잘 지내보세.”

다정다감했던 중대장, 단 한 번도 나를 인격적으로 무시한 적 없었던 중대장,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던 중대장,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FM중대장과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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