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론] 김복회 전 오근장 동장
청주시립미술관에서 강익중, 윤형근 화가의 미술전이 있으니 꼭 가보라고 선배에게 문자가 왔다. 평소 미술에 대하여 문외한이라 맘이 선뜻 나서질 않았다. 그런데 작품설명을 해준다는 말에 친구랑 같이 갔다.
미술관에 도착해 보니 통합청주시 10주년기념으로 청주출신 강익중 화가의 ‘청주로 가는 길’과 윤형근 화가의 ‘담담하게’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높이 10m 4면의 벽과 바닥에 3천자의 문자로 200개 문장을 형형색색으로 써놓아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 문장 속에 들어 있는 내용들은 작가가 40년 가까이 비망록처럼 평소 좋아하는 말을 적어놓은 것이라고 했다. 학예사가 그중 몇 문장을 읽어주며 그와 관련된 그림도 전시중이라고 했다.
그림 설명할 때 필기를 하고 싶은데 시간도 없고 설명을 제대로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녹음을 하며 들었다. 1층에서 형형색색의 말에 현혹된 채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거대한 무심천 그림이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무심천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으로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3인치 캔버스 안에 그림 만 여장의 다양한 그림들이 전시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삼라만상, 해지월드, 달항아리 등 천여 개의 드로잉들도 있었다. 밑이 좁고 위가 넓은 달 항아리는 무엇이든지 담을 수 있는 포용을 의미한다고 했다. 사람 안에 우주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강익중 화가의 유학생활은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넉넉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주중에는 식품점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벼룩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여 돈을 벌었고, 하루에 12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했다.
이런 어려운 생활로 그림 그릴 시간이 많지 않아 3인치의 캔버스를 만들어,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며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렇게 그린 3인치 캔버스가 십 만장이나 된단다. 그 캔버스에는 어린 시절 추억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그가 알고 있는 일상의 단편들을 기호나 문자, 그림으로 채웠다고 했다. 강 작가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4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 작가와 ‘멀티풀 다이얼로그전’을 함께 열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백남준 예술가가 돌아가시고 나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멀티풀 다이얼로그전’이라는 이름으로 백남준 작가 추모를 겸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단다. 실향민들에게 고향집에 대한 추억을 그리게 한 엽서를 모아 런던의 템즈강에 띠운 ‘집으로 가는 길’에 전시했던 작은 엽서모양의 그림에는 집으로 가는 길과 고향에서 살던 집을 정성껏 그린 작은 엽서 속에서 그들의 아득한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강익중 작가는 남북한 어린이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 임진각에 ‘꿈에 다리’를 세우는 것이 꿈이었지만, 북한에서 그림을 가지고 나올 수 없는 등 어려움이 많아 앞으로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단다. 작가는 무심천과 우암산이 어릴 적 활동무대였다고 했다. 그런 추억들이 무심천과 우암산의 추억을 아름답게 승화하여 그리게 했나 보다.
강익중 작가는 “미술은 사람을 연결시키고, 상처를 치료하고, 잠자는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며 작가의 임무라고 말했다고 한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이런 훌륭한 화가들이 우리 지역 출신의 화가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