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체육회 관계자의 약삭빠른 엄살인지 소심함인지 금메달 5개와 15위를 목표로 했던 파리올림픽은 목표치를 훨씬 상회하는 금메달 13개에 8위로 막을 내렸다. 과도한 목표를 잡았다 달성하지 못했을 때의 비난에 비하면, 주먹구구식으로 목표를 정해놓고도 초과 달성하니 그다지 말이 없다. 결과가 좋으니, 여론도 관대해지는 것 같다. 풍성한 결과와 달리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우승하고 시상식 후에 배드민턴협회의 부조리를 폭로한 안세영 선수 사건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내부고발자(공익 제보자)는 불의에 저항해 불이익을 감수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으로 떠받드는 대중의 분위기가 있다. 반면 내부고발이 조직의 화합과 안위를 해치는 면을 강조해 파렴치한 배신자로 보는 소수의 시각 또한 있다. 이렇게 내부고발자와 조직의 배신자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공익 제보인가 배신인가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고 주관적일 수 있지만 평가의 기반에는 그 조직이 얼마나 건강한 조직이며 도덕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부패하고 문제가 많은 조직이라면 내부고발은 공익적이고 필요한 고발이라 규정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세영 선수의 폭로는 정당한 공익적 고발로 평가되고, 문제가 있어 보이는 배드민턴협회는 대중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유사 이래 모든 사회가 그러했듯이 우리 사회도 새로운 젊은 세대와 지도자 위치에 있는 기득권 세대의 갈등은 자주 발생한다. 이런 갈등의 원인은 대체로 세대 간 문화와 가치의 차이 때문이다. 특히 특별한 기술을 먼저 익힌 선배나 선임자가 도제식 훈련으로 후배를 길러내는 방식일 때는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의 권한이 절대 우위에 있어 갈등의 가능성이 더 높다. 엘리트 체육을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체육 분야나 의사와 수련의, 대학의 지도교수와 박사과정, 예능인 양성 등의 분야에서는 상명하복의 집단주의적 문화가 관행이다. 이렇게 위치의 우열이 일방적일 때 그 지위를 이용한 일방적인 권한 행사는 많은 문제를 만들어낸다.

지금 젊은 세대는 일방적인 지시와 개인의 희생을 거부한다. 어쩔 수 없이 부당함을 참고 있다가 스타가 되면 억눌러왔던 욕망이 폭발하곤 한다. 자신이 약할 때는 참고 있다가 스타가 된 후 일방적으로 폭로하는 방법은 문제가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스타가 된 자신의 가치와 협상력의 크기를 인지하고 그걸 활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게 신세대이며 이런 기회를 활용해 억울함을 푸는 것도 그 나름의 방식일 수 있다. 비판받는 선배와 기득권 세대는 도덕적으로 불리하고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으니 수세적일 수밖에 없다. 상명하복과 보수적 문화가 강한 스포츠계는 극적으로 스타가 되어 신분의 변화가 더 자주 일어나는 조직이다.

세대 간 문화충돌이 있으면 언제나 그랬듯이 신세대가 승자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산꼭대기에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있는 바위는 외부의 충격에 뒤로든 앞으로든 굴러내려 간다. 세상의 균형도 그렇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 후 바람의 방향에 따라 폼페이는 사라지고 나폴리는 번영했듯이 여론과 대중의 요구가 어느 쪽이냐에 따라 구조는 재편되고 세상은 바뀐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