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김헌일 청주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지난 10일 밤 요르단 암만에서 대한민국과 요르단의 월드컵 3차 예선 경기가 있었다. 서늘한 외줄 타기를 보는 듯 불안한 경기였다. 지난 아시안컵 대회 준결승 요르단전 패배 이후 클린스만 감독이 물러났다.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 예선을 코 앞에 두고 불투명한 대표팀 감독 선임 문제로 국회 현안 질의와 국정감사에 불려 다녔다. FIFA에서는 정부의 정치적 개입이라는 공식 문서를 보냈다. 외국의 비슷한 사례에서 FIFA는 몰수패 등 제재를 했다. 제대로 된 경기 준비가 이루어졌을 리 없다. 경기에 진다면 대한축구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의 갈등은 불 보듯 뻔하고 대표팀 미래와 북중미 월드컵 본선 참가가 불투명해진다.

모든 논란의 중심에 선 3명, 정몽규 축구협회장, 홍명보 국가대표 감독, 이임생 기술위원장 이들은 모두 고려대학교 동문이다. 대한민국은 김호곤, 허정무 등의 연세대와 김정남, 차범근 등의 고려대 양대 세력이 번갈아 가며 축구계를 이끌어왔다. 지금 대한민국 축구계는 이들 기득권과 신진 세력의 갈등이 드러난 것이다. 갈등의 시작은 2002 한·일 월드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월드컵 유치 후 대한민국은 축구선수 육성 정책에 집중했다. 초·중·고 학생부터 대학까지 전 연령대에서 선수발굴 육성이 확대되었고, 월드컵 경기 성과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시기의 히딩크 감독 체제에서 실력 우선으로 선수들을 과감히 기용했다. 박지성(명지대), 이영표(건국대), 안정환(아주대), 김남일(한양대), 최진철(숭실대), 김태영(동아대) 등이다. 역대 대표팀 중 가장 파격적인 기용이었다고 평가받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세대교체가 아닌 이른바 대학 혈통 교체의 시기를 알렸다. 월드컵 붐 이후 사회적 인식변화와 함께 손흥민, 이강인 같은 조기 유학 세대가 등장했다. 기성용, 이청용 같은 프로팀 유스 출신 선수의 성공 후 고졸 선수들의 프로팀 진출이 줄을 이었다. 실력 좋은 연세대 고려대 출신 선수는 이젠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아시안컵 요르단전 패배로 클린스만 감독이 물러난 후 손흥민 이강인 몸싸움이 드러났다. 해이해진 대표팀 기강을 바로잡는 것이 급선무라 판단한 축구협회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 홍명보 감독 말고는 답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축구인들과 팬들은 ‘과연 홍명보 감독만이 답이었나?’라고 반문하고 있다.

故정주영 회장의 서울올림픽 유치처럼, 정부의 주문으로 현대그룹은 정몽준 회장 중심으로 월드컵 유치 준비에서부터 전력을 다했고,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오랜 기간 FIFA 부회장으로 영향력도 행사했다. 뒤를 이은 사촌 정몽규 회장은 프로팀 구단주, 프로축구연맹 총재, 축구협회장까지 행보를 이어갔다. 이들은 울산 현대, 전북 현대, 부산 아이파크 등 프로축구 활성화에도 꾸준히 기여했다. 재정 지원 등 현대가(家)의 막대한 후원을 대체할 존재를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장기 집권체제는 결국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능력이 안 되면 물러나야 한다. 떠나야 할 때다. 솔직히 안타깝다. 그동안 대한민국 축구에 고려대 연세대 출신 축구인들과 현대가의 공(功)은 분명하다. 그러나 실력이 우선되는 상황에서, 뒤떨어지는 대학 혈통은 이미 존재 가치를 상실했고 대중은 더 이상 특정 대학 출신을 원하지 않는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조용히 퇴장해야 할 때다.

다만, 지금은 월드컵 예선 기간이다. 팬들도 정부도 축구협회도 현 상황에서 가장 우선 되는 과제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당장 최선은 북중미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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