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여고생 시절 닥치는 대로 읽었던 소설들은 짜릿한 감동을 주었다. 급우가 소설책을 가지고 학교에 나타나면 그 책을 빌려보고 싶어 순번을 얻느라 무던히 애썼다. 책을 빌릴 수 있는 한정된 시간이란 겨우 이삼일이었다. 읽고 재빨리 돌려주어야 다음 대기자의 눈총을 받지 않았고 그렇게 책을 읽은 갈래머리 소녀끼리는 소설책 주인공 이야기로 몇 날 며칠 상기 되었다.
선생님들은 지나가는 바람 소리만 들어도 까르르 웃는 소녀들이 즐겨 읽는 책을 삼류소설이라고 단정했다. 만약 이런 종류의 책을 들켰다간 문제아로 찍히거나 책을 빼앗겨 책 주인에게 원망도 들어야만 했다.
수업 시간에 등이 서늘했던 적이 있다. 돌아보니 매서운 눈빛을 쏘아대는 선생님이 서 계셨다. 빨리 읽고 때맞추어 돌려줘야겠기에 책상 서랍에 감추고 몰래 읽고 있었는데 기어코 들키고야 만 것이다. 비록 등짝에 스매싱을 당하거나 고함은 듣지 않았어도 끔찍했던 눈빛과 절절매던 심정이 아직도 기억나는 것을 보면 놀라도 많이 놀랐던가 보다.
불만족은 삶을 힘들게 한다. 매사 부정적 시각을 가지게 되며 자신감도 떨어진다. 누구나 사는 일이 녹록하지 않지만, 누군가의 만족은 긍정적 여유 덕분에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게 하고 누군가는 불행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책을 통한 대리만족은 영혼을 잠식한다. 그래서 얻어지는 감정이란 자신감이다. 학창 시절 들킬세라 숨어 읽든 이른바 삼류소설로 매도된 책으로 대리만족했고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았다. 남녀 간의 사랑을 지고지순하게 보며 매우 건강하고 아름답게 생각할 수 있게도 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최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를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올린 바가 있다. ‘채식주의자’가 2016년 영국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을 때도 대통령은 축전조차 보내지 않았다.
보수세력은 작가와 책을 사상 검증하려고 눈에 불을 켰다. 심지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책 ‘소년이 온다’를 사전 검열 대상으로 분류하고 사상 편향을 들어 정부의 우수도서 보급 사업에서도 탈락시켰다. 더구나 당시 정권은 한강 작가를 해외 행사 초청에서 배제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작가의 저서 중 ‘채식주의자’가 경기도교육청에 의해 청소년 성교육 유해 도서로 분류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2022년 3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약 1년간 폐기 작업이란 명목으로 추진되었는데 이 리스트 안에 소설 ‘채식주의자’가 포함됐고 이를 포함해 2528권의 책이 폐기 처리된 사실을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채식주의자’ 폐기는 임태희 현 경기도 교육감의 조치였다고 했다. 사상검열을 하려던 사람들은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부끄러운 과거가 들춰졌다고 말하며 지금이라도 관계자는 작가에게 사과하고 학생과 학부모님에게도 사죄하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국 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의 실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덕분에 한국문학과 출판계가 더욱 번성한다면 우리나라의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 소설가는 이 암울한 시대에 위로를 주는 한 줄기 빛이다.
명품을 구매하기 위해 오픈런도 당연한 사회상이 되었다. 그러나 노벨문학상 작가의 책을 사기 위해 서점 문을 열기도 전에 오픈런이 벌어지고 있다. 청주의 대형 서점도 작가의 저서가 동나고 급기야 책이 모두 소진됐다는 안내판까지 걸게 되었다.
그래서 펜의 힘은 칼보다 강하다고 하지 않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