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눈] 임명옥 우송대학교 교수

‘초급 한국어’를 가르칠 때, 예외 없이 만나는 두 유형의 학생이 있다. 먼저, 한국어를 배우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모른다고,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학생들이 있다. 필자는 그 열정에 부응하여 보충 지도를 하기로 한다. 학생들은 어미 새를 보고 먹이를 달라는 새끼 새들처럼 고도로 집중해서, 오물오물 자모음을 큰 소리로 따라 한다. 이런 태도로 공부하면 금방 발음을 익히고 일취월장할 거 같아 보충 시간이 그야말로 덩실덩실 춤판이다. 그런데, 며칠 지나 물어보면, 전혀 안 배운 것처럼 기억을 못 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지만 ‘그럴 수도 있어’하며 다시 가르치고 배운다. 그러나, 며칠 지나 확인해보면 역시 하나도 안 가르친 거 같다. 이런 결과의 원인을 망설이지 않고 확언한다. “가르친 것, 복습을 전혀 하지 않았어.”

다음은, 기초는 본국에서 충분히 배우고 한국에 왔으니 좀 어려운 것을 가르쳐 달라는 학생들이 있다. 중·고급을 배우기 전에 숙지해야 할 항목을 진단해보면,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닌 애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급 복습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럴 필요가 절대 없다고 고집을 피운다. 학생이 배우고 싶어 하는 내용을 가르쳐보지만, 결국 초급 내용 대부분을 틀려서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런 결과의 원인을 망설이지 않고 확언한다. “배운 것, 복습을 전혀 하지 않았어.”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선생은 답답하고 학생은 기가 꺾인다. 언제까지 이렇게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나 하나? 콩나물은 항아리에서 옴짝달싹 못 하니 물만 부어도 크겠지만, 우리 애들은 교실에 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 ‘스스로 익히지 않는 습관’ 때문에 진전이 없다는 확신이 더 강해지면, ‘선생이 어쩌라고’ 하면서,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며 뒷담화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속이 좀 풀린다. 그런데, 그렇게 속이 좀 풀릴라치면, 어김없이 그 틈을 타 어떤 생각이 비집고 들어온다.

그 생각은 바로, 위 학생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학생 스스로 선생을 찾아와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모름을 아는 것, 배우고 싶어 하는 마음, 용기 내어 선생을 찾아온 태도 등을 생각하면 기특하다. ‘그렇게 선생을 찾아왔으면, 선생이 가르쳐준 대로 해서 익혀야지’하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삐쭉 내민다. 위 학생들로부터 자꾸 도망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학생을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임을 인정하고 ‘이래서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 중얼거리며, 어떻게 할까를 생각한다.

계획한 만큼의 내용을, 계획한 시간 안에 가르쳐야 한다는 욕심을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만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 학생이 소화할 만큼의 내용을 정하고, 일정 기간은 학생을 옆에 끼고 해야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학생의 성취가 보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때도 온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생각해 보니, 이런 똑같은 시행착오를 매 학기 예외 없이 겪고 있다. 이유가 궁금하다. 욕심일 수도, 무능일 수도 있다고 인정해야 할 거 같다. 가르치는 사람의 욕심은 무능을 낳고, 그 무능이 배우려는 사람의 기를 한없이 꺾을 수 있음을 기억하겠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