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박효영 궁중기록화가
‘청주읍성도(淸州邑城圖)’는 조선 후기 무신인 류억(1796~1852) 선생 때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조선 후기의 청주 읍성 내 가로망의 변천을 명확하게 측정하고, 주변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당시 생활상을 담은 역사적, 지리적 사료의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도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빈객을 맞이하던 객사(客舍)와 수령이 공무를 집행하던 동헌(東軒), 병사(兵使)가 병무를 집행하던 병영군(兵營群), 사창(社倉) 등의 시설물과 4성문, 표충사(表忠祠), 옥, 동장(銅檣), 철당간(鐵幢竿), 홍전문(紅箭門), 압각수(鴨脚樹), 비각(碑閣) 그리고 8개소의 우물 등이 표시되어 있다.
현재 원본은 전남 구례 운조루에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청주읍성도는 ‘문화 류씨’ 개인 소장품이다 보니 저작권 등의 이유로 청주시민이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박효영 명인이 청주읍성도를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8개월 동안 10여 차례나 구례 운조루를 방문하여, 원본과의 꼼꼼한 대조작업을 거쳐 재현의 진정성을 꾀했다. 2017년, 완성된 2점의 지도를 청주시와 운조루에 기증한 바 있다.
류억 선생은 순조 25년(1825년) 무과에 급제해 선전관 등을 거쳐 충청도 병마절도사 청주우후를 지냈다.
류억 선생에 관한 일화로는 이웃 사랑을 실천한 문화 류씨 집안의 ‘타인능해’ 쌀 뒤주 이야기로 유명하다. 문화 류씨가 대대로 살았던 운조루 곳간채에 있는 쌀 뒤주에는 “다른 사람도 열 수 있다”는 뜻에 따라 누구나 와서 쌀을 퍼갈 수 있었다. 어느 날 류억 선생은 뒤주에 쌀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며느리를 불러, “쌀이 남은 것은 베풀지 않은 것이니 당장 주민에게 나눠라. 그믐날(월말)에는 뒤주에 쌀이 없도록 하라”고 말했다.
청주읍성은 역사도시 청주의 원형이고, 중심공간이며 귀중한 역사적 자산이다. 청주읍성은 ‘삼국사기’에서도 기록을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 읍성 중 축조연대를 문헌으로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성이다. 이러한 청주읍성의 옛 모습을 기리며, 역사와 문화를 꽃피우는 청주의 내일을 함께 맞이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