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형 사고’를 쳤다.
당시엔 문학집을 팔려고 대학가를 기웃대던 상인들이 몇 있었는데, 그들의 입담이 얼마나 셌는지 웬만한 학생들은 홀라당 넘어가기 일쑤였다. 나도 그런 ‘어리숙한’ 학생 중 하나여서, 덜컥 ‘제3세대 문학’을 샀는데, 모두 24권이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아마 10만원 안팎이었던 것 같다. 당시 대학 등록금이 43만원이었으니 나로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거금이었는데, 그네들의 말빨에 속수무책 당한 격.
어쨌든 그거 갚느라 일당 8000원짜리 막노동판을 다녀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말빨에 넘어갔던 어리숙함이 전화위복으로 바뀌었달까, 들인 돈이 아까워 탐독했던 24권의 책들은, 비록 비루함을 면하지는 못했지만 내 글의 자양분이 됐다.
탁월한 문학 유전자를 지닌 가문
그건 분명 새로운 세계였다. 시대와 삶 속에 숨겨져 있는 뒷면을 어찌 이렇듯 진지하게 성찰해내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시대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인간의 구원이란 명제는 늘 나에게 새로운 고민을 안겨주곤 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등이 그랬다.
‘제3세대 문학’에 이름을 올린,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활동했던 작가들의 보면 한국 문학사에 큰 궤적을 남긴 이들임을 알 수 있다. 이청준, 조세희, 윤흥길, 김원일, 최인호, 이문열, 김승옥, 오정희, 황석영, 박완서, 김주영, 한수산 등등.
여기에 이름을 올린 작가 중 빼놓을 수 없는 이가 한승원이었다.
그래서 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을 때도, 지난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수상하면서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을 때도 그를 ‘소설가 한강’이 아닌 ‘한승원의 딸’로 내 기억에 저장했었다.
그러고 보면 유전자의 힘이란 게 참 대단한가 보다. 그의 가족을 보면 그렇다.
평자들은 아버지 한승원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섬세한 서사와 그의 딸 한강의 감각적이고 철학적인 문체는 서로 다른 결을 지니고 있지만, 결국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라는 공통된 주제를 공유한다고 이야기 한다. 한강 자신도 문학적 성장을 이야기할 때 아버지 한승원의 영향력을 자주 언급했었다.
부전여전이다.
한승원의 장남 한규호(아명 한국인)도 신춘문예 등단 작가다. 한동림이라는 필명을 쓰고 동화를 쓸 때는 본명을 쓴다. 3남매 중 막내인 차남 한강인도 만화작가로 활동 중이다. 그의 조부는 시 짓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득량만과 에로티시즘이 떠오른다
한승원은 1982년 대한민국문학상, 1983년 한국문학작가상, 1988년 현대문학상과 이상문학상, 2006년 9회 김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특히 1988년 12회 이상문학상에서 ‘해변의 길손’으로 작가 임철우의 ‘붉은 방’과 함께 공동수상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이다. 깊은 성찰과 인간적 감동을 전하며 한국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담아내는 그의 작품에서 내 기억에 짙게 남아 있는 것은 소설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득량만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투박한 에로티시즘이다.
한강을 이야기할 때 한승원을 먼저 떠올리게 되니. 내 나이도 솔잖게 먹었는가 보다.
1980년대 낭만 가득했던 캠퍼스와 그의 소설을 읽으며 가졌던 상념들이 이젠 아련한 추억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