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2025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윤 대통령의 불참에 따라 이날 연설문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했다. 총리가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대독한 건 2013년 이후 11년 만이다.
시정연설은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대통령이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연설이다. 특히나 거대 야당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선 대통령의 참석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는 모습이 있었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불참했다.
시정연설은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시작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부터 매년 시정연설에 나섰으며 윤 대통령도 지난해까지 참석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이미 지난 9월 22대 국회 개원식에도 불참한 바 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를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민께서 크게 실망하셨을 것”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국회 무시가 참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강하게 규탄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내에조차 비판이 나왔다. ‘국민께 송구하다’,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윤 대통령은 연설문에서 “내년 예산이 적기에 집행되어 국민께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법정시한 내에 예산안을 확정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국회 협조를 당부했다.
‘패싱’ 당한 거대 야당에서 그 부탁을 들어줄 마음이 생기겠는가 싶다.
이번 시정연설 불참은 윤 대통령과 명태균씨 간 통화녹음이 공개된 뒤 야당의 압박 수위가 더 올라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여야의 극한 대결을 이유로 지난 9월 22대 국회 개원식에도 불참한 바 있기 때문에, 그 맥락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
탄핵 직전 시정연설을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이 떠올랐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라의 살림을 결정짓는 국회의 장에 참석했어야 했다.
시정연설은 대통령이 그동안 지켰던 관행이었다.
더욱이 윤 대통령은 2년 전 민주당의 시정연설 보이콧에 대해 “좋은 관행은 어떠한 어려운 상황이 있더라도 지켜져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 한 바 있다. 그래서 자가당착이다.
대통령이 직접 시정연설을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이고, 국회에 대한 존중이다.
‘갑을 관계’로 봐도 그렇다. 새 예산안을 부탁하는 것은 대통령이고 이에 대한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국회다. 국정 추진에 예산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작금의 상황은 북-러 군사협력, 의료대란 등 중대 현안이 산적해 있다. 이에 대한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반대 여론이 있다면 진솔하게 설득하는 게 대통령의 책무다. 국민들도 국정 현안에 대한 대통령 생각을 직접 들을 권리가 있다.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으로 국회와의 관계는 더욱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민주당 등 야당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 대한 대대적인 삭감을 예고한 상태다.
‘돌을 맞더라도’ 정공법으로 가야 했다. 여기서 정공법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양 진실을 부인하는 게 아니다. 있는 사실 그대로 진솔하고 세세하게 국민들에게 고해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