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코너에 불… 대참사
3日(일) 새벽 2시 41분쯤 서울 東大門區(동대문구) 典農2洞(전농2동) 620의 69 大旺(대왕)코너(사장 金(김)호전·49) 6層(층)에서 불이 나 타임클럽에서 춤추던 고고족과 브라운호텔 투숙객 등 88명(男(남)49·女(여)39명)이 숨지고 3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대연각호텔 화재 이후 최대의 인명 피해를 낸 이 불은 6層 브라운호텔 632호실에서 發火(발화), 계단을 통해 타임클럽과 7층 멕시코 캬바레에 SDA英語(영어)학원으로 번져 1천20평의 내부를 모두 태우고 3시간 38분 후인 새벽 6시 20분께 완전 진화됐다.
화재 당시 6·7층에는 客室(객실) 57개가 있는 브라운호텔의 투숙객 35명, 타임클럽 손님 1백20명, 종업원 29명 등 모두 1백84명이 있었는데 고고클럽에서 64명, 호텔에서 5명이 불에 타 숨지거나 질식死(사)하고 8명이 추락死했으며 7층 옥상에서 3명, 6층 화장실에서 18명이 타죽은 것으로 公式(공식) 집계됐다.
警察(경찰)은 인근 전농洞파출소에 事故對策本部(사고대책본부)를 設置(설치), 부상자를 동산병원 등 5개 병원에 분산 入院(입원)시키고 시체 정리작업을 펴고 있으나 호텔숙박부가 불타버린데다 대부분의 희생자가 大然閣(대연각)화재 당시처럼 성별을 구별하기 힘든 정도로 타버려 死亡者(사망자) 신원 파악에 큰 곤란을 겪고 있다. <하략·9140호·1974년 11월 5일자 1면>
대왕코너 화재는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것이었다.
나이트클럽, 캬바레에서 큰 피해가 난 원인은 실내 장식이 가연성이어서 준공검사 승인도 받지 못했는데 이를 무시하고 운영해 왔으며 다섯 차례에 걸친 소방 시설 개수 명령도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시 소방당국은 초반 4차례 걸쳐 인화성 내부장식을 없애라고 행정지도를 했고 나머지 1번은 스프링클러나 긴급 방송시설을 구비하도록 했지만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대연각호텔 화재 이후 정부가 종업원들에게 월 1회씩 소방 훈련을 시켰음에도 소화기를 쓸 줄 아는 종업원들이 없었다.
이에 앞서 1971년 12월 25일 오전 9시 50분 발생한 대연각호텔 화재는 유례를 찾기 힘든 대형 참사였다. 이 화재는 소방대와 군, 미군의 헬기까지 동원됐지만 접근이 어려워 구조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출구가 막혀버린 상황에서 투숙객은 창문에서 뛰어내렸고, 투신으로 사망한 38명을 포함해 모두 163명이 숨졌다. 호텔 화재로서 세계 최악의 사건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것은 대왕코너 화재가 세 번이나 발생했다는 것이다. 1972년(사망 6명, 부상 60명), 1974년(사망 88명, 부상 35명), 1975년(3명 사망) 세 차례 벌어진 일련의 화재 사고로 인해 대왕코너가 위치했던 옛 롯데백화점 청량리점 자리는 ‘화재 사고의 온상’으로 불리게 됐다. 결국 세 번째 화재로 인해 대왕코너는 서울특별시에 의해 폐쇄 조치를 받았고 경매에 넘어갔다.
이 건물은 청량리역 인근 미관을 개선하고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세워진 모범상가였으나 시작부터 잡음이 있었다. 1968년 건설 당시 3층에 카바레 입점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고, 1971년에는 강도에게 여행사 사무실이 털리기도 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내용은 1974년 발생한 화재다. /김명기 편집인·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