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김헌일 청주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어느 격투기 종목 세계 최고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이 있다. 20대 젊었을 때다. 경기장에서 상대를 쓰러트리고 승자가 되었을 때 세상으로부터 박수와 인정을 받았다. 정해진 규칙안에서 서로 경쟁을 통해 쟁취한 승리와 영광이다. 4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일상에서 싸우고 있다. 어릴 적 훈련받은 대로 상대를 쓰러뜨려야만 생존할 수 있는 줄 안다. 이기는 것 이외 다른 것은 할 줄 모르기에 누군가를 이겨야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삶의 방식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 문제는, 그가 경기장에서 승리라는 가치를 갖기 위해 정해진 규칙으로 상대 선수와 겨루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신의 모든 주변인 혹은 집단과 이유 없이 무작정 겨루는 것이다.
경기장에서 그의 겨룸을 ‘경쟁’이라 하고, 일상에서의 행동을 ‘싸움’이라 한다. 우리는 때때로 ‘경쟁’과 ‘싸움’을 혼동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불필요한 다툼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저 ‘싸움’이다. 주변에서 ‘경쟁’과 ‘싸움’의 혼란으로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을 관찰할 수 있다.
‘경쟁’은 특정한 목적을 두고 서로 겨루는 것을 의미하는데, 제한된 가치를 두고 서로 차지하려는 행위를 말한다. 스포츠에서 승리를 위한 겨룸, 비즈니스에서 동종 기업이 소비자를 확보하려는 최선의 행위 등을 경쟁이라 한다. ‘싸움’은 이와 매우 유사하다. 다만, 싸움은 무기를 들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폭력을 써서라도 이기려 하는 것을 말한다. ‘경쟁’은 상처가 목적이 아닌 ‘가치 획득’이라면, 싸움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무조건 이기고 보는 것’에 집중한다. 그때 그 시절 우리는 ‘무조건 싸워 이겨야 산다’고 교육받았다.
진정한 경쟁은 노력과 실력으로 승리를 이룬다. 먹자골목처럼 동종 상권이 밀집된 곳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언뜻 생각해 보면 같은 업종이 모여 서로 손해를 볼 것 같지만, 이들은 서로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생존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노력하고 실력을 갖춘다. 결국 실력 있는 강력한 집단이 되어 모두가 상생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혹 특정 가게끼리 싸움이라도 하면 싸우느라 허비하는 에너지로 실력을 쌓지 못하고 도태되어 곧 상권에서 소멸하게 된다. 대한민국이 치킨 ‘맛’ 강국이 된 것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장 발전하고 경쟁력을 갖춘 결과다.
싸움은 이기기 위해 비윤리적인 사고나 행동마저 서슴지 않는다. 그저 이기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상대의 고통은 오히려 쾌감이 되기까지 한다. 큰 싸움이 전쟁이다. 싸움의 끝은 고통과 죽음뿐이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 경쟁은 생산적이고, 싸움은 소모적이다. ‘출혈경쟁’이란 말이 있다. 피를 흘리는 것은 경쟁이 아닌 그저 싸움이다.
싸우지 않고, 가치 분배의 권력을 갖는 행위를 정치라 할 수 있다. 정치의 가장 완성된 형태라 하는 민주주의는 정치 집단 혹은 개인 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구성원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통치 권력을 획득하고, 그 권력을 구성원의 안위와 행복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성장을 위해 올곧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생명력을 갖는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매일 싸움만 한다. 싸움의 결과는 상처뿐인 공멸(共滅)이다. 생존을 위해 경쟁은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필요한 것이다.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모두가 행복’이라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선의(善意)의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싸움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