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김헌일 청주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얼마 전 산수(傘壽) 여든 살 넘은 아버님께서 편찮으셨다. 병원에 가봐도 별다른 병명을 찾기 어려웠다. 눈 오는 날에도 등산하시던 아버님께서 갑자기 식사를 못 하시고 잠을 못 주무신다. 기운 없다며 눕지도, 앉지도 못하고 괴로워하셨다. 비상계엄 뉴스에 잠 못 이루었다는 가수 나훈아의 기사를 보고서 혹시나 해 아버님께 여쭤봤다. ‘아버지! 혹시 12월 4일부터 안 좋으셨어요?’ 날짜를 세어보시던 아버님께서 ‘그런 것 같네….’라 하신다. 그랬다. 12월 3일 밤 갑작스러운 뉴스를 접하시고서는 밤을 꼬박 새우셨단다. 뉴스를 보느라 며칠이고 잠을 못 이루신 것 같다. 뉴스 시청을 중단하시고 하루가 지나고 나니 증상이 사라졌다.

많은 국민이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다. 비상계엄 때문에 불안하고, 우울하고,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환율, 주가가 불안정했다. 나라가, 사업이 잘못될까 봐 걱정된다고 한다. 분노한 일부 국민은 거리로 나왔다. 군사정권을 경험했던 어르신들은 공포가 더 심하셨다고 한다. 5.18 광주 현장에 계셨던 분들은 더더욱 힘겨운 상태라 한다. 질병인 ‘트라우마’로 설명한다. 그날 이후 정치권력과는 상관없는 국민조차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다. 착하고, 힘없고, 쇠약한 국민일수록 더 심하게 아프단다.

학습 삼아 매일 CNN 뉴스를 찾아보는 중학생 딸아이, 요즘 계엄 사태와 관련하여 대한민국 뉴스가, 윤석열 대통령 사진이 매일 나와 당황스럽다고 한다. 아이 보기 부끄럽다. 외신은 무엇보다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놀라운 비상계엄 상황 자체에 집중했다. 그들은 더 이상 변방이 아닌 세계 10대 경제 대국, 군사 대국 대한민국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신경 쓴다. 다른 한편으로, 국회 의결에 따라 즉시 비상계엄이 해제된 사실에도 놀라워한다. 6.25, IMF 등을 이겨낸 대한민국의 강한 회복력이 또다시 빛을 발했다는 반응이다.

그들의 반응은 사실이다. 전쟁 후 불과 70년 만에 역사 이래 최고의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많은 나라들이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군사 쿠데타를 겪었지만, 대한민국은 군사 권력을 국민의 피로, 민주주의로 이겨냈다. 아찔했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도 잘 이겨냈다. 6.25 직후 가장 열악했던 빈곤국이 오일쇼크를, 외환위기를 다 이겨내고 10대 경제 국가가 되었다.

매일 모든 언론이 비상계엄 사태를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체포, 사살, 위기 같은 온갖 부정적인 제목이 도배를 한다. ‘속보’가 줄을 잇는다. 국민의 알권리라고 한다. 사람들이 보게 만드는 제목을 써야 돈이 된다. 언론사 수익이 된다. 누가 누가 가장 자극적인 제목을 다는지,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드는지 경쟁하는 것 같다. 불안한 국민은 그런 보도를 찾아보게 되고 병은 더욱 심각해져 간다.

경찰, 검찰, 공수처, 국방부. 대한민국의 가동 가능한 모든 수사기관이 열정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스릴러 영화같다. 한 치의 흐트러짐이라도 발생하면 서로 견제하는 수사 권력끼리 먹잇감이 된다. 꼼꼼하게 수사할 수밖에 없다. 계엄 상황을 두고 관련자들 각자 말이 다르다. 진실은 정확한 수사를 통해서만 밝힐 수 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선동에 놀아나 섣부른 판단을 하면 그대로 자기 자신만 아프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을 의결하고 헌법재판소로 넘겼다. 이제부터는 수사와 법적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더 이상 슬퍼하지 말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제와 오늘 말을 바꾸는 언론이 뭐라고 해도 일희일비(一喜一悲),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생활에 충실해야 한다. 병 나으신 아버지처럼, 걱정말고 대한민국의 저력(底力)을 믿고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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