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창 화백 타계 10주년 기념 특별전
'바보산수' 등 대표작 100여점 한곳에

▲ 운보미술관동상 © 편집부
▲ 운보미술관전경 © 편집부
[충청일보]'운보의집'은 김기창 화백이 말년에 어머니의 고향인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에 낙향하여 마지막 창작의 혼을 불태웠던 곳이다. 그가 생전에 좋아했던 갖가지 괴목분재와 수석 등으로 장식 충북의 대표 관광지가 되고 있다.

김기창 화백은 근대 한국화가로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는 서울에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8세 때 장티푸스를 앓으면서 농아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개성 정화여학교 교사를 지낸 바 있는 신여성으로 운보가 김은호의 문하생이 되어 화가 수업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배려 덕분이었다.

그의 나이 17세 때 제10회 '조선미술전'에 입선한후 24세 때 '제16회 선전'에 할머니의 옛얘기를 듣는 아이들을 담은 '고담'으로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았다. 50년대까지 한국화의 평면 구성을 입체적으로 바꾼 '노점', '복덕방', 60년대 들어서는 역동적인 모습이 인상적인 '탈춤', '군마도' 등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1946년 33세의 늦은 나이에 서양화가인 우향 박래현과 결혼했으며 이후 부부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는 생전에 두 여인을 잊지 못한다고 했는데 한 여인은 어머니, 또 한여인은 부인 우향이었다.

운보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보산수에서 샘솟는 한국 미술의 전통성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현대적인 재해석, 자연주의적인 사상, 해학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의 이같은 왕성한 활동으로 제12회 3·1문화상을 비롯하여 은관 문화훈장(1977), 국민훈장 모란장(1981), 예술원상(1983), 서울시 문화상(1986) 등을 받았다. 2001년 1월 23일 타계할 때 까지 무려 1만5000점의 작품을 발표하는 열정을 보였다.

운보가 사망한후 운보의집은 '운보문화재단', '운보와사람들'에 의해 관리됐다. 운보 후손의 부도로 경매를 통해 운보의집을 이들 두 재단이 인수하게 된것이다.

이후 운보의집이 급격한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최근 청주에 거주하는 곽모씨가 운보공방 등을 인수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곽씨는 운보의집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곳에서 '제빵왕 김탁구' 등 드라마가 자주 제작되고 있어 점차 관람객이 증가하고 있다. 운보의집이 활성화 되면서 운보미술관도 자연스럽게 관람객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운보미술관은 이번 청주국제비엔날레 기간에 '운보와 우향 40년 만에 나들이 특별전'을 개최한다.

김기창 화백 사망 10주기를 맞아 부인인 우향과 함께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다. 이들의 대표작 100여점이 한곳에서 전시되는 것이 처음이어서 많은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전망된다.
글·사진=조무주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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