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겨울이 시작될 무렵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어머니 전화기로 이웃에 사는 분이 걸어온 전화였다. 어머니가 혼자되고 난 후로는 25년간 거의 매일 일정한 시간에 안부 전화를 해왔고, 이렇게 반복되는 통화는 어느새 서로에게 꼭 필요한 행위가 되었다. 곁에서 모시지 못하는 내게는 별일 없이 계시고 있음을 확인해 안도감을 주는 통화였고, 늘 자식이 그리운 어머니에게는 자식과의 유대를 확인해 마음에 평온함을 주는 통화였다. 그런데 이렇게 보통의 통화 시간이 아닌 느닷없는 시간에 오는 전화는 무슨 특별한 일이 생겼음을 알리는 불길한 전화가 대부분이다. 평범한 보통의 일상에 불쑥 끼어들어 삶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일은 이렇게 예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일어난다.

어머니는 1931년생으로 이제 우리 나이로 95세이다. 청춘의 우상으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70년 전에 세상을 떠나 이미 아득한 기억으로만 남은 할리우드 스타 제임스 딘과 동갑의 나이이고 보니 대부분의 또래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살아있어도 온전한 일상을 보내는 분이 거의 없는 나이이다. 다행스럽게도 정신도 맑고 나이에 비해 건강한 생활을 하셨었는데 노인의 대부분이 피해 가지 못하는 불행이 어머니에게도 닥쳤다. 고령에 흔한 생기는 낙상으로 인한 고관절 골절이 어머니가 받은 진단명이다. 수술과 지루한 재활 과정이 피할 수 없이 겪어야 할 고통스러운 일이고 잘되어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는 일이다.

행정안전부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작년 12월에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가 됐다고 한다. 인구 구조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으니 이에 따라 적지 않은 사회적 문제와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낡고 병든 몸에 갇힌 정신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이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일이고 초고령사회라는 것은 이러한 인구가 매우 많다는 뜻이다. 시집가기 싫다는 처녀의 말, 밑지고 판다는 장사꾼의 말과 함께 3대 거짓말이라는 노인의 죽고 싶다는 말에는 병든 몸으로 연명하는 괴로운 삶이 아닌 건강하게 살다 죽고 싶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본다. 평균수명이 늘었다고 하나 이 속에는 건강하지 못한 몸을 의학의 힘으로 연명해 존엄을 유지 못 하는 질 낮은 삶도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당사자는 물론 그 삶을 연장하고 있는 주변 사람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보통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은 남은 이에게 준비되지 못한 이별이 주는 아쉬움으로 마음에 상처를 준다. 반대로 병석에 누워 주변의 도움으로 연명하는 삶이 과도하게 길어진다면 주위 사람은 병시중과 뒷바라지로 인한 육체적 고통으로 힘들어할 수밖에 없다. 결국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기간과 과도한 병시중으로 보호자를 피폐하게 하지 않을 정도이며, 세상을 떠나는 당사자도 너무 존엄을 잃지 않을 정도의 기간이라면 3~6개월 정도의 와병 생활 이후 세상을 떠나는 모양이 모두에게 적당한 아픔의 기간일는지도 모르겠다. 적당한 양의 고통과 이별이란 말이 적합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이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너무 괴롭지 않게 떠나는 것도 아름다운 삶의 한 부분일 것 같다. 하지만 삶과 죽음을 결정할 권한이 인간에게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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