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심완보 충청대 교수
1992년 당시 세계 1위의 컴퓨터 제조업체였던 IBM은 당시에는 다윗과 골리앗으로 비유될 만큼 회사의 규모나 기술력 면에서 비교가 안 되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 운영체제와 PC 운영체제의 주도권을 놓고 PC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IBM은 승리를 위한 회심의 일격으로 세계 최초로 32비트 운영체제인 OS/2 2.0을 내놓았다. 그러나 당시 메모리의 가격이 매우 비쌌던 상황임에도 OS/2 2.0의 최소 요구 메모리는 4MB로 당시 많이 쓰이던 2MB 메모리의 두배 이상을 요구했으며, 권장 메모리는 무려 16MB였다. 1MB 미만의 적은 메모리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 운영체제는 무리없이 잘 구동되었으나 IBM의 OS/2에서는 매우 버거웠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나 윈도우즈 3.1을 사용하던 사용자들은 IBM의 OS/2가 성능이 월등함에도 불구하고 외면했다.
IBM의 OS/2는 결국 PC 운영체제의 경쟁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에 밀려 역사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이러한 상황은 최근 혜성과 같이 나타난 중국의 스타트업인 딥시크를 통해 데자뷰를 느끼게 한다. 2025년 1월 27일 딥시크가 ‘Deepseek-R1’을 발표하였으며, 저비용 고성능 AI 모델로 시장을 뒤흔들었다. 발표 직후 투자자들은 AI 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부상과 엔비디아의 독점적 위치가 위협받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고, 그로 인해 엔비디아 주가가 17% 급락하여 시가총액 850조 원이 증발하였다.
딥시크의 출현은 미국 AI 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미국 AI의 ‘스푸트니크 순간’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딥시크가 이러한 평가를 받는 몇가지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딥시크의 AI 모델은 기존 모델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성능을 달성했다. 이는 고성능 AI에는 고가의 최첨단 반도체가 필요하다는 기존 관념을 파괴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딥시크가 모델을 오픈소스로 출시한 것이다. 이는 개발자와 연구자들이 딥시크의 기술을 무료로 자유롭게 이용하여 더욱 새롭고 강력한 AI 모델의 출현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방성은 AI 커뮤니티에서 보다 협력적인 환경을 조성하여 발전과 응용을 가속시킬 것이고 개발비용을 감소시킬 것이다.
딥시크의 등장은 한국 AI 산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이번 딥시크 사례에서도 드러났듯, 미국의 칩 수출 규제가 중국 기업들의 기술 발전을 오히려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한국은 반도체, IT 인프라, 소프트웨어 인재 등 AI 개발의 핵심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LLM 개발에서는 미국과 중국에 뒤처져 있다. 그러나 이번 딥시크의 사례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낮은 사양의 하드웨어로도 최고 수준의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풍부한 GPU 리소스를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도 최적화 기술과 창의적인 접근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LLM을 개발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예산 투자와 인센티브 제공이 절실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정치적 상황까지 겹쳐 대통령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는 개점휴업 상태라고 한다.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이러한 국정공백 상황이 정치적 우울감뿐만 아니라 경제적, 학문적 우울감도 느끼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