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김기준ㆍ문화체육부장

▲김기준ㆍ문화체육부장
뭐랄까? 이것은 소중한 사람을 소중히 다루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허탈감인 듯싶다.

또 충북이 낳은 한 시인의 삶과 문학적 업적이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데도 방관하는 충북 문단을 향한 원망이라 해도 좋다.

한국 시단에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의 깃발을 올렸던 천재 시인 권구현(權九玄). 그가 잊히고 있다.

권 시인은 영동군 양산면 산막리 출신이다.1920년대 좌파 지식문인들이 시조를 배격하고 있을 때 적극적으로 저항시조를 쓴 대표적 시인이 바로 권 시인이다.

이 당시 그는 '흑방(흑房)의 선물(1927)' '벗에게 부치는 편지(1929)' '자중(自重)(1929)'등 주옥같은 시집을 발표하며 무정부주의 시인으로 역사에 각인된다. 하지만 대부분 천재 시인들이 그랬듯이 그도 한 시대를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고 만다.

권 시인은 초기에 '시조6장(詩調六章)(1926)' '폭풍우의 마음(1927)'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목적의식을 내세워 도식주의(圖式主義)·기계주의 경향으로 기울자 김화산·강허봉 등이 중심 이었던 아나키스트 문학에 이경삼과 함께 가담, 프롤레타리아 문학파와 논쟁을 벌였다.

한국 현대 시단에서 차지하는 권 시인의 문학적 의미와 비중은 남다르다. 권 시인의 시조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부산대학교 고현철 교수는 "아나키즘 문학을 대표했던 권 시인의 문학적 업적은 동시대를 살았던 여타의 시인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며"현재도 많은 국문학도들이 석·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로 권 시인의 작품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처럼 한국 현대 시단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권 시인이 정작 고향인 영동과 충북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점은 유감의 차원을 넘어 문학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영동군에는 현재 양강면 송호리에 권 시인의 시비 하나 초라하게 서 있다.
인근 보은군은 회인 출신의 오장환 시인을 기리기 위해 생가를 복원하고, 매년 작품집 발간과 '오장환 문학제'를 치르고 있다. 또 옥천군은 향수의 시인 정지용을 옥천의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지용문학상 개최 등'정지용 문학제'를 성대히 열고 있다.

이에 반해 영동군은 오장환과 정지용에 버금가는 시인을 배출 했으면서도 전혀 조명작업을 하지 않고있다. 생가복원이나 작품집 확보는 물론 권 시인을 알리기 위한 문학제도 없다.

심지어 권 시인이 영동 출신임을 아는 공직자나 주민도 거의 없을 정도다. 충북의 문인들도 마찬가지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를 비롯하여 포석 조명희 시인, 오장환·정지용 시인에 대한 업적 기리기에는 열을 올렸지만 권 시인에 대한 재조명 작업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한마디로 권 시인은 일부 학자들에게만 귀중한 존재였다.

문단에 이름을 올린 많은 시인들이 정지용 시인의 생가가 있는 옥천군을 자주 찾는다. 이들은 또 오장환 시인이 보은 출신이고, 회인에 생가가 있다는 사실에 깜작 놀란다. 그들의 문학여행은 자연스럽게 옥천에서 보은으로 이어지고 있다.

만약, 이들이 권구현 시인이 영동 출신임을 안다면 영동까지 들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남부 3군의 오장환(보은), 정지용(옥천), 권구현(영동) 시인을 함께 묶어 패치워크 문학상품으로 개발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문학여행 상품은 많은 문학도들에게 의미 있는 선물이 될 것으로 본다. 시인의 생가를 방문해 시인의 마음을 읽고, 시인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인의 고향을 이해함으로써 보은·옥천·영동을 문학의 고장으로 새롭게 변신 시킬 것이다.

영동군과 충북의 문인들은 이제라도 권 시인의 생가를 복원하는 한편 그의 이름 석 자가 들어간 문학제와 문학상을 만들어야 한다. 생존해 있는 가족들을 찾아내고 그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한국의 자랑으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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