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애정이 식지 않은 연인과의 결별처럼 불편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기로 했다. 사랑과 헌신을 내주었던 지난 시간과, 함께 견뎌낸 날들을 떠올리며 괴로웠지만 결국은 그렇게 되었다. 불교에서는 생로병사를 유한한 생명체인 인간은 누구도 피할 수 없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4가지 고통이라고 한다. 이렇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할지는 모든 종교와 공동체의 숙제였지만 모두가 만족하는 해법이란 없다. 더욱이 그 중 삶의 마무리 단계에서 맞이하게 되는 노병사(老病死)라는 상황은 쇠약해진 육신으로 견뎌야 하는 당사자나 경제적 육체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보호자 모두에게 가혹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생명체가 살아가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안전하지만 밋밋하고 지루한 삶과, 역동적이고 자유분방하나 다소 위험하고 굴곡 있는 삶이 그것이다. 혁신적인 삶으로 생을 마감한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해군으로 사느니 해적으로 살겠다.”라는 말을 했다. 해군은 덜 위험하고 안정적이지만 규율에 얽매여 답답한 삶일 수 있고, 해적은 위험하고 불안에 시달리지만, 자극적이고 자유분방한 삶이기 때문에 상반된다. 안전과 보호를 포기하고 자유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자유로움보다 안전과 보호가 우선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어떤 삶을 택할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선택의 문제이다. 안전을 택하는 삶은 희로애락에서 행복의 고점을 낮추고 불행의 저점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가 적은 평탄한 삶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구십 대 중반의 어머니는 몇 달 전 낙상으로 인한 골절로 수술을 했고 두어 달의 입원과 재활을 거치며 급격히 쇠약해지셨다. 고령에도 최소한의 주변 도움만으로 비교적 괜찮은 일상을 유지해 오셨었는데, 이제는 독립생활이 위험해 나머지 삶을 위한 어떤 선택이든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언젠가 맞이해야 할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날이 이렇게 다가왔다. 고령의 쇠약한 육체를 자기 의지로 통제하기 힘드니 보호와 외부의 손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요양시설에 위탁한다 해도 영원한 이별일 리야 없지만, 이런 날이 오고 보니 노년의 쓸쓸함과 죽음을 떠올리게 되고 착잡하고 어수선한 마음이 된다. 안전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자신을 위로하지만, 불편한 마음이 영 가시지를 않는다.
라틴어 경구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카르페 디엠(Crape Diem)이 있다. 전자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말로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알고 겸손해지라는 뜻이고, 카르페 디엠은 ‘현재를 잡아라.’는 말로 지금을 즐기라는 뜻이다. 정반대의 말 같지만 곱씹어보면 유한한 생명체로 소멸하고 말 운명이니 현재에 충실히 하라는 뜻으로 같은 말의 다른 표현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양시설 입소하는 어머니를 위해 필요한 준비물을 작은 보따리에 싸 놓았다. 어머니의 긴 인생길에 겪어온 많은 일들의 희로애락과 삶의 굴곡이 결국은 저 작은 보따리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삶의 덧없음에 더욱 마음이 쓸쓸하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인 늙음과 죽음에 누군들 담담한 마음일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오늘을 충실히 사는 게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일 뿐임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