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

민족대표 33인의 공동 명의로 1919년 3·1 운동 때 발표된, 대한민국(조선)의 독립을 세계 만방에 알리기 위해 작성된 기미독립선언서의 일부다.

원래는 대중이 모일 탑골공원에서 발표하려고 했으나 유혈 사태를 우려해 태화관이라는 요릿집으로 장소를 바꿔 조용히 선언식을 진행한 민족대표 33인은 선언문 낭독 직후 즉시 경찰에 자수하고 순순히 연행됐다.

이에 당시 탑골공원에 모여 있었던 사람들은 머뭇거리다가 33인의 선언식과는 별도의 선언식을 진행한 후 만세 운동을 개시했다고 한다.

다른 선언문에 비해 기미독립선언서에는 무력을 이용해 투쟁하자는 내용이 없다.

오로지 '정의라는 이름의 군대'와 '인도주의라는 이름의 무기'에 힘입어 독립을 주장하고 있으며 '우리는 일본의 배신을 죄주거나 무도함을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난 잘못을 꾸짖을 겨를이 없다'는 등의 내용도 들어 있다.

이런 독립선언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촉발된 3·1 운동은 '평화', '비폭력 정신', '민주주의'가 빛난 독립 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자유와 평등은 모든 민족의 정당한 권리이므로 마땅히 독립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 저항 운동이었다.

여타의 반일 투쟁 중에서도 만세 시위만으로 우리의 의지를 표명한, 비폭력 평화 정신의 실천이었다.

해마다 돌아오는 3월의 첫 날은 바로 이를 기념하는 삼일절이다.

일각에서는 '순국선열을 추도·애도하는 묵념을 올리는 날'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삼일절은 조국 광복의 뿌리가 된 3·1 운동을 기념하고 대한민국 건국의 출발을 축하하는 국가적인 명절이다.

독립운동가를 추모하는 날로는 현충일과 순국선열의 날이 있다.

'크기나 힘과 상관 없이 모든 나라는 서로를 존중하고 각 나라의 자유(자주)를 인정하며 평화롭게 더불어 살아야 한다'라고 질서를 갖춰 외친 이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현재의 대한민국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놓고 진영 간 갈등이 유례 없이 심각한 상황이다.

광화문 광장으로 대표되던 집회 장소는 급기야 대학 캠퍼스로까지 확대됐고 자신들의 주장을 외치는 수준을 넘어서 멱살잡이와 파괴 등 폭력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게다가 정치인들도 모자라 한국사 일타 강사라는 사람들까지 탄핵 찬반으로 나뉘어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한때 삼일절만 되면 이를 기념한다면서 폭주족들이 야간에 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지금은 경찰의 단속이 강해지면서 보기 힘들지만 이젠 폭주족이 아니라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삼일절을 기해 절정에 달하리라고 보인다.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2016년 출간한 저서 '민주주의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민주주의는 갑자기 무너지지 않으며 규범의 침식과 권력 남용, 극단적 대립 속에서 서서히 쇠퇴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상호 관용과 자제라는 규범을 통해 민주주의가 궤도에서 탈선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기한 대로 비폭력 평화 정신의 실천이었던 3·1 운동은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공생의 정신 또한 담고 있다.

극단의 분열과 대립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이번 106주년 삼일절이 반목의 심화가 아니라 진영 간 갈등이 사그라지는 반환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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