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지난번 보르게제 미술관 소장 카라바조의 작품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을 소개하며, 작품이 오는 3월 27일까지 열리는 한가람미술관 ‘빛의 거장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얼굴들’ 전시에 직접 우리 곁에 찾아왔다고 했다. 짬이 나지 않아 실제 전시는 한참 후에야 보러 가게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전시실들을 지나며 눈길로는 ‘다윗’을 찾다 마지막 전시실 출구 바로 곁에서 드디어 고대하던 작품 앞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그림을 보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윗의 얼굴이 보르게제에서 본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품 설명을 보니 이 작품은 보르게제 미술관 소장품과 쌍둥이 같은 또 다른 작품이며, ‘취리히’ 소장이라고 되어 있었다.
카라바조는 다윗과 골리앗의 테마로 여러 작품을 그렸는데, 보통 프라도 미술관, 빈 미술사박물관, 그리고 보르게제 미술관에 소장된 각각 서로 다른 구도로 그려진 세 점의 ‘다윗과 골리앗’이 그의 작품들로 소개되곤 하였다. 그동안 나도 이 세 버전의 ‘다윗과 골리앗’만 봐왔는데, 이번에 ‘보르게제 다윗’과 쌍둥이같이 닮은 ‘취리히 다윗’을 만나게 되었다.
문헌들에 따르면 카라바조가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을 두 번 그렸다고 하고, 두 작품 다 1693년 4월 7일 작성된 보르게제 가문 소장목록 66에 기록되어 있었으나, 1790년 일부 작품을 판매하면서 작성된 또 다른 소장목록에는 단일 작품만 있다는 것이다. 현재 ‘보르게제 다윗’이 그 최종 남은 작품인 것은 확실한데, 나머지 한 버전의 행방과 경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런가 하면 1693년 소장목록에 기록된 두 점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작품 중 하나는 카라바조의 것이 아니라는 가설도 있다.
이번 전시도록에서는 2004년 데니스 마혼이나 2005년 미다 그레고리가 카라바조가 1606년경에 ‘취리히 다윗’을 추기경 쉬피오네 보르게제의 의뢰로 제작한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작품을 의뢰해 제작했던 시기와 작품의 양식 또한 일치한다고 보고 있다. ‘취리히 다윗’의 경우 19세기부터 1990년까지 보르게제 가문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쌍둥이 같은 두 ‘다윗’을 비교해보면, 전체적으로 ‘보르게제 다윗’에서는 음영이 섬세하게 표현되었다면 ‘취리히 다윗’은 보다 강렬한 조명을 받은 모습이다. 특히 보르게제 본 다윗의 얼굴은 빛과 음영의 대비 속에 표정에 감정이 섬세하게 드러나는데, 취리히 본 다윗의 얼굴은 훨씬 밝게 조명되어 있어 음영의 뉘앙스가 덜 두드러지고, 취리히 본은 다윗의 코가 아주 크게 그려진 것도 보르게제 본과 차이가 난다.
또한, 보르게제 본 다윗이 든 칼날에는 알파벳이 적혀 있지만, 취리히 본 칼날에는 아무것도 안 적혀 있다. ‘보르게제 다윗’에서 다윗의 오른팔 부분은 어둠에 잠겨 드러나지 않는데, 취리히 버전에서는 오른팔 소매의 주름까지 세밀하게 드러나 있다. 이에 근거해 보르게제 미술관 작품과 이번 한가람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은 동일한 주제와 구도를 지닌 쌍둥이 같은 작품이지만, 서로의 복제본으로 간주 될 수 없다는 학설도 있다. 알려진 여러 복제본(최소 7점)이 모두 잘 알려진 ‘보르게제 다윗’을 모델로 하고 있고 ‘취리히 다윗’의 복제본은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카라바조의 작품들은 그림의 현재 소장까지의 경위가 명확하지 않아 진위논란이 아마 계속될 수 있겠지만, ‘보르게제 다윗’에 이어 ‘취리히 다윗’을 보게 되면서 서로 모르고 지냈던 두 쌍둥이를 처음 마주하게 된 듯 반갑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