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최선만 농협충북본부 단장

필자가 20여 년간 농협에 근무하면서 농업분야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이 두루 하소연 하는 말이 있다. “물가상승 뉴스만 나오면 마트에 농산물 코너를 배경으로 야채값이 급등했다”고 강조하는 기사가 나와 물가상승의 주범이 마치 농산물인양 호도된다는 것이다.

진짜 물가상승의 주범이 농산물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잘못된 사실이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물가안정에 가장 기여하고 희생한 분야는 농산물이라고 단언한다. 물가는 여러가지 기준이 있지만 여기서는 가락동시장 경매가격 시세정보 등을 통해 주요 품목을 확인해 보겠다.

먼저 주식인 쌀이다. 1990년 기준 20kg 쌀의 소비자 판매가는 통상 3만원 내외다. 2024년 20kg 쌀값은 5만5000원 정도로 1990년 대비 약 1.8배가 올랐다. 그렇다면 쌀의 대체재 식품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는 라면의 경우는 어떠할까? 1990년 기준 대표적인 라면기업의 한 봉지 가격은 250원 이었다. 2024년말 기준 같은 라면제품의 가격은 850원으로 3.4배가 올랐다. 대부분의 라면제품들이 4배 내외로 인상되었다. 결과적으로 쌀이 2배 정도 오르는 동안 라면은 4배가 올랐다.

더 나아가 라면값을 인상할 때마다 거론된 사유는 원재료 가격의 상승인데 주된 원재료는 수입산 밀이다. 그러면 수입산 밀의 국제시세는 어떠했을까? 마찬가지로 1990년대 밀 가격은 톤당 약 150달러다. 2024년에는 350달러로 2.3배가 올랐다. 같은 농산물인데도 수입산 밀 가격도 우리 쌀 보다 약 1.2배가 더 올랐다.

물가는 한편으로 농가소득과도 직결된다. 쌀농사 짓는 것보다 라면을 파는 사람의 소득이 물가상승의 반영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물론 쌀의 경우 식량안보와 국민 주식으로서의 다각적인 지원을 통해 누구든 부담없이 쌀을 구매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농산물의 경우에도 1990년과 2024년의 가격을 비교해 보면 주요한 소비품목인 배추는 약 3배, 감자 2배, 고추 2배 등이 오른 반면, 우리 생활에 밀접한 것들인 치킨값은 약 3.3배, 짜장면값은 8배, 기름값은 5배, 택시요금 값은 4배가 올랐다. 물가라는 것이 복합적인 경제요소들이 작용하는 것이라 필자의 주장이 단편적이고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농산물은 그동안 다른 생필품이나 주요한 물자들에 비해 물가상승이 가장 적은 분야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더욱이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언급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아울러, 최근에 런치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나왔을 정도로 점심식사값이 1만원 시대가 도래했다. 왜 이렇게 식사값이 올랐을까를 살펴보면 인건비, 건물 임대료 등 실제 식재료와는 무관한 요소들이 많다. 충북 지역에 국내산 농·축산물을 중심으로 구내식당을 직영하는 곳의 경우 식재료 원가 1인당 4천원 내외면 충분히 맛깔나는 점심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점심값 1만원에는 식재료보다 식재료 외 값이 더 들어가 있는 것이다. 요컨대, 농산물은 일반 공산품과 달리 계절성과 자연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아 상대적으로 가격 등락폭이 높은 특성을 갖고 있다. 이는 태생적인 것이다. 가격이 폭락해서 농가의 시름이 커질 때는 잠잠하다가 일시적으로 가격이 폭등하면 물가상승의 원흉으로 매도하는 ‘배은망덕한 현상’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우리 농산물의 은혜를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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